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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으로 투병, 67세 생일 다음날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청초한 모습과 개섬있는연기로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울려주던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잉그리드·버그먼」이 30일 영국런던저택에서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l915년 8월29일생인「버그먼」 만 67세의 생일을 하루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이다.
「버그먼」은 74년이래 유방암을 앓아 왔었다. 74년과 78년 두차례나 양쪽 유방절재수술을 받았으며 근년엔 건강이 많이 좋아져 81년엔 TV영화『「골다」라고 불리던 여인』(A Woman Called Golda)에서 20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수상이었던 「골다·메이어」역을 맡아 호연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2부작 영화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있다. 42년『카사블랑카』에서「험프리·브가트」와 공연, 비극의히로인으로 세계팬들을 울렸던 『가스등』(44년) 과 『추상(아나스타샤)』(56년)에서 여우주연상을, 74년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여우상을 몹시 싫어하던 그녀는「래너·터녀」나「마릴린·먼로」등의 육체와 그녀를 비교할때 몹시 화를 냈었다.
「버그먼」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지난5월이었다. UPI통신은 이 사실을 세계에 전하고 『지성과 아름다움과 연기의 창조력으로 영화예술의 꽃을 피운「잉그리드·버그먼」의 투병을지켜보자』고 그녀의 쾌유를 빌었다.
「버그먼」은 UPI와의 힉견에서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비통한 말을 했었다.
그러면서 『그러나 나는 이사태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에게 남겨진 인생을 더 충실한 것으로 이룩할 생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버그먼」 의 아버지는 사진각가이며 화가였다. 그러나 그녀가 2세때 어머니가, 3세때 아버지가 사망해 고아가 됐으며 이때부터 내향적인 아가씨가 됐다.
36년 미국영화제에 데뷔, 『간주곡』이란 영화에 출연했으며 39년『이별』의대성공으로 그녀는 하루아침에 세계의 스타로 등장했다. 당시「버그먼」은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청초한 미모였었다.
이어『지킬박사와 하이드씨』(41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43년),『가스등』 『새라트가본선』(45년),『오명』(46년)등의 영화에출연했으나 46년 이탈리아감독 「로베르트·릇셀리니」와의 사랑으로 그녀는 미국을 떠났었다.
48년 「버그먼」 과 「롯셀리니」와의 정사는 당시 세계의 최대 스캔들로 톱뉴스가 되었다.
신문들은「버그먼」이 37년에 결혼한 남편이며 외과의사인 「페터·린드스트롬」박사와 딸 「괴어」를 버리고 유부남이었던「로윌리니」에게 향했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했다.
「버그먼」은 남편「린드스트롬」박사와 이혼도 하기전에 아기를 낳았고 50년에「로셀리니」와 정식결혼했다. 그뒤 「버그먼」은 1남1녀의 쌍동이를 더 낳았다. 「버그먼」은 죄의식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인이든 여배우든 직업을 갖고있는 어머니들의 고충도 이해해달라』며『직업여성의 경우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행복했던 결혼도 이탈리아 법정의 결혼무효판결로 8년만에 끝장,「릇젤리니」와도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58년 연극 프러듀서이며 백만장자인 세번째 남편 「라즈·슈미트」와 결혼했으나 이결혼도 역시 15년만에 깨어지고 만다.
「버그만」은 77년 「리브·울만」과 공연한「가을 소나타」를 마지막으로 은막을 떠났었다. <김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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