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급전직하…멕시코 경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촉망받던 유망기업이 하루아침에 부도직전의 부실기업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최근의 멕시코경제가 꼭 그런 짝이다.
멕시코의 외상규모는 우리나라의 2배인 8백억 달러. 부도가 납 경우 경제적인 금융공황으로 번질 관이다.
오히려 돈용 빌려준 쪽이 더 급해졌다. 이례적으로 미국의 중앙은행총재까지 나서서 IMF(국제통화기금)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에 대해 추가지원협조를 요청하는가 하면 1백15개 채권은행들도 결국 상환기일을 연기해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부도기업에 대한 사상최대의 국제금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멕시코는 세계적인 대 은행들이 돈을 못 빌려줘서 안달하던 1등 투자대상 국으로 손꼽혔다.
80년 한해동안만 해도 1백억 달러의 외자가 쏟아져 들어갔고 은행들은 저마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제2차 석유파동에서 횡재를 한 멕시코정부는 거대한 산업화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빚 낸 돈으로 대규모 제철·석유화학공장을 짓고 초현대식항만시설 공사를 곳곳에서 벌였다.
석유 값은 계속 오르고 추정매장량이 3천억 배럴이나 되는 마당에 빌어쓰는 쪽이나 빌려주는 쪽이나 빚 갚는 걱정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연간 8%의 성장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페소화 가치의 계속적인 강세는 멕시코경제의 신뢰도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탄은 너무 일찍 왔다. 배럴당 38달러를 홋가하던 석유가격이 최근 28달러 선까지 떨어지면서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석유수출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수출물량도 하루평균 1백50만 배럴이던 것이 70만∼80만 배럴로 떨어져 연간 석유수출 수인은 2백70억 달러에서 l백40억 달러로 급감했다.
석유가 총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형편이니까 석유수인의 급감은 곧바로 외환시점의 악화를 몰고 왔다.
멕시코정부당국은 그동안 추진해오던 대규모 산업화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 조정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으나 이미 대가 늦었다. 석유수입으로 흥청망청 잔뜩 바람이 들어있던 경제가 하루아침에 진정될리 만무였다.
오히려 그동안 풀린 돈으로 인플레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76년 언저리에 중동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방만한 통화운영을 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물가폭등을 겪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멕시코물가는 금년 들어 이미 70%나 올랐고 연말에 가서는 1백%선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가가 떨어지자 즉각 페소화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인플레-환율인상-인플레」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페소화의 하락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달러를 써오던 멕시코정부도 아무 효험 없이 외환사정만 더 악화되자 지난5일 드디어 손을 들고 말았다.
일만 달러 하에 대한 페소화의 환율을 69·5페소(초년 말에는 22·95페소)로 묶어버리는 동결조치를 취했으나 암시장에서는 벌써 1백30페소까지 치솟고있는 실정이다.
IMF측에서는 40억 달러의 금융지원을 조건으로 인플레를 잡기 위한 강력한 긴축과 임금억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잘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정부가 앞장서서 풍요한 사회건설을 약속했고 들뜬 국민들 역시 만사형통 하리라 고만 믿어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허리띠를 죄고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긴축정책이 재대로 통할리 없다.
멕시코 경제가 이지경이 되자 가장 고민이 큰 나라는 역시 접경 국이며 가장 빚을 많이 준 미국이다.
미국은행들만 따져서 약3백억 달러가 몰렸을 뿐 아니라 늘어나는 실업자들이 불법월경 해오는 경우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악화일로에 있는 멕시코경제는 폴란드 사태이후 또 하나의 혹을 국제금융시장에 붙여놓은 셈이다.
그러나 폴란드경제에 비하면 빚쟁이들의 태도가 훨씬 후한 편이다. 뭐니뭐니해도 석유를 비롯한 은·아연 등의 엄청난 지하자원에 대한 매력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외지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