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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요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년 간의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한 지체부자유자 4명이 법관임용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우선 놀랍다. 본인들이 받은 충격은 물론이려니와 그동안 장애자문제에 대해 높아지던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이다.
대법원은 임용인원에 제한이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대법원이 설명한 바로는『법관은 품위와 위신을 갖추어야 되고 현장검증이 빈번해서 신체적으로 건강해야되기 때문에 이들을 부적격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실적 실무에만 집착한 이 같은 설명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것은 법관으로서의 요건과 장애자복지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비뚤어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관으로서의 요건은 이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소정의 법관 수습교육을 이수한 점에서 1차 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지체부자유자라는 신체적 결함은 이들이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부터 비 자격요건에서 제외된 것이며 이제이것을 문제삼는 것은 매우 궁색한 일이다.
법관의 품위와 위신은 법률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인간성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판단력으로 구성되는 것이지 외모나 체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들은 지체부자유자라는 남다른 여건 때문에 법관생활에 대한 ♥신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이들의 법관임용탈락은 신체장애자를 백안친하는 사고가 운연중 발로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일이 사회정의구현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일어났다는데서 충격은 더욱 크다.
능률을 위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장애자가 정당한 생존권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국가정책이나 사회인식도 일시적인 전시효과 아니면 동정과 연민으로 대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점차 장애자도 완전한 인격체로 동등한 사회참여의 기회를 주어야하며 이것은 곧 국가나 사회의 의무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이성이 사회의 구조적 장벽을 허문 것이다. 작년(81년)을「세계 장애자의 해」로 정한 유엔은『완전참여와 평등』을 표제로 내걸었다.
장애자에게 장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회적 차별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선언이었다. 또 이것은 인간의 기본권만은 어떤 이유로도 제약될 수 없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것이다.
우리 제5공화국의 헌법도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보장은 괄목할 만큼 진전된 내용을 담고있다. 각인의 기회균등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은 물론 행복추구권, 국가의 사회복지 증진의무, 원호대상자 우선고용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사상 처음으로 심신장애자 복지 법을 재정, 장애자의 취업 권을 보장했다. 능력만 있는 장애자라면 차별과 편견 없이 정상인과 동등하게 자기에게 알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같은 선진적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사회 저준에는 장애자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편견은 국민모두의 노력으로 하나씩 불식해가야 되며 특히 국가기관에서부터 솔선수범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으며 하루빨리 그들에게 법관자격을 주기 바란다. 법관으로서 그들이 대성할지의 여부는 차후 그들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며 미리부터 그 자격조차 박탈함은 가혹하다.
우리는 신체장애자이면서 존경받는 법관을 많이 갖고 있다. 초대 김병노 대법원장도 그랬고 이인 법무장관도 지체부자유자였다.
「프랭클린·루스벨트」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었으며「모세·다얀」은 독안으로도 이스라엘국민의 영웅이었다.
이런 얘기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인데도 우리의 사법부가 고루한 편견에 젖어 있음을 개탄해 마지않으며 다시금 대국적 판단이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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