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천생 배우 김자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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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자옥'의 부고를 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묘한 덜컥거림이었다.

‘설마’라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까닭도 아니다. 지난 사월, 악극 '봄날은 간다' 인터뷰용 사진 한 장 찍은 게 고작일 뿐이다.

인터뷰이를 만나면 얼굴 생김과 안색 및 행동을 살피는 게 사진기자의 기본.
열심히 살폈다.
환갑 넘은 나이지만 얼굴, 여전히 곱디곱다.
긴 인터뷰에도 잃지 않는 웃음, 환하고 훤하다.
인터뷰를 지켜보는 사진기자의 주전부리를 챙기는 마음, 살갑고 정겹다.

만사를 제치고 혼신을 다 쏟아야 하는 악극의 연습과 공연, 그리고 인터뷰.
분명 힘들었을 터인데 병색을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눈치 십 단이라 자부하면서도 그녀의 아픈 기미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설마’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던 게다.

소품용 자전거에 앉아 최주봉, 윤문식 선생과 함께한 사진 촬영.

“할머니 나이지만 그래도 배우니 이쁘게 찍어 줘야해.”

“호박에 줄긋는 다고 수박되나?”는 윤문식 선생의 농에 터져버린 웃음.

공주님 표정은 단박에 무장해제 되어 촬영 내내 이어졌다.

“공주님! 이쁘게 나오는 건 포기하십시오.”

“왜?”

“죄송하지만, 재미있는 사진이 악극 기사엔 딱 인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괜찮아.”

악극을 위해 공주님을 포기 할 줄 아는 천생 배우.
그렇다면 괜찮다던 공주님 특유의 어투와 표정, 오래도록 어른거릴 것 같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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