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김 기사님 전상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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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전국의 30만 택시기사님, 오늘도 덕분에 무사 출근한 평범한 시민입니다. 비교적 저렴한 택시요금 덕에 운전면허증은 비상용 신분증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택시를 타면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일본 택시처럼 비싼 요금 때문에 마음을 졸이거나 뉴욕 택시처럼 테러 방지 유리창 때문에 답답할 이유도 없는데 말입니다. 왜일까요.

 불확실성이라는 요소가 큰 것 같습니다. 요금은 동일해도 어떤 기사님을 만날지는 복불복이지요. “택시 몰아 삼남매를 대학까지 보냈다”는 베테랑도 있지만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이 몬다”며 당당히 “길 좀 알려 달라”는 분도 많습니다. 라디오 볼륨을 좀 낮춰 달라고 하면 뚱한 표정으로 꺼버리셔서 민망한 침묵이 차내를 채웁니다. 그러다 보면 왼쪽 뒷좌석까지 열려 있는 창문을 닫아 달라는 얘기는 언감생심이죠. 서울 도심의 ‘레이서형’ 기사님들은 또 어떻고요. 앞을 가로막는 차가 있으면 앞지르고, 주행 중인데도 얼굴을 돌려 상대 운전자를 째려 보는 신공도 발휘하십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춘 분이 가을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걸 겁니다.

 외국인들은 한국 택시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서울에서 4년간 살다가 최근 귀국한 유럽 외교관은 “한국의 택시만큼은 그립지 않을 거다”라면서 과속·승차거부를 불편함으로 꼽았습니다. 6년째 서울에 사는 미국인은 “친절한 기사는 과도하게 친절해서 부담스럽고 불친절한 기사와는 언성을 높이게 된다”며 “극과 극인 게 한국 사회를 닮았다”고 촌평하더군요. 요금을 지불하고 타는 승객인데 응당한 서비스를 못 받는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기사님들도 진상 승객 때문에 괴로우시지요. 이달 초 택시조합에서 택시 내 기물 파손 등에 대한 벌금을 20만원으로 규정한 걸 두고 논란도 뜨겁습니다. “진상 승객도 있지만 진상 기사는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도 인터넷엔 떠돕니다. 결국 기사도 승객도 모두 불행한 것 같네요. 소설가 김영하는 한국의 택시를 두고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煉獄)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지요. 요금이 싸다 보니 서비스의 질이 낮고, 승객들은 질 낮은 서비스에 대해 비싼 요금을 지불할 필요를 못 느끼는 악순환입니다.

 그래도 변치 않는 한 가지. 저희는 역시 기사님 없이는 못 산다는 겁니다. 서로를 승객으로, 프로로 존중하면 천국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저도 앞으론 ‘아저씨’ 대신 ‘기사님’이란 호칭을 쓰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무사히, 잘 부탁드립니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