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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부녀 총잡이'… 아빠와 함께 쏘니 명중 또 명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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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태릉클레이사격장에서 아버지 김대원씨가 딸의 사격자세를 교해 주고 있다.

"민지야, 너는 아침 굶고 점심도 안 먹고 어떻게 총을 쏘니."

"아빠, 내가 왜 안 먹어.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맞춰서 과일 먹었단 말이야."

이 부녀(父女), 만났다 하면 싸운다. 아빠는 더 잘할 수 있는데 꾀 부리는 듯한 딸이 얄밉고, 딸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지 않는 아빠에게 불만이다. 그래도 훈련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도 태릉 푸른동산 사격장을 피서지 삼아 구슬땀을 흘리는 한국 클레이 사격계의 별난 '총잡이 부녀'다.

아버지 김대원(49)씨는 김포시청 소속 선수이고, 딸 민지(16.안산정보여고2)는 지난해부터 총을 잡은 신예다. 둘 다 주종목은 스키트(앞쪽으로 날아가는 접시를 쏘는 종목).

민지는 5월 24일 태릉사격장에서 열린 제1회 청와대 경호실장기 전국 사격대회 여고부 스키트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 겸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본선 75발 중 72발을 맞혀 크리스틴 브링커(독일)가 4월 창원월드컵에서 세운 71점을 한 달 만에 깨 버렸다. 민지는 올해 전국대회 성적을 합산해 뽑는 대표선수 선발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클레이 국가대표 김하연 코치는 "총을 잡은 지 1년 반 만에 이 정도 기록을 쐈다면 재능은 타고난 것이다. 민지가 국가대표가 돼 국제 경험만 쌓는다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릴 만하다"고 평가했다.

건축업을 하며 재미로 총을 쏘던 아버지 김씨는 1996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해 전국대회 우승도 몇 차례 했다. 담이 크고 고집 세고, 공부는 지독히 하기 싫어하는 것까지 아빠를 빼닮았다는 민지. 아빠를 따라다니다 자연스레 총을 잡게 됐다. 딸의 가능성을 발견한 김씨는 사업을 2년 전부터 지인에게 맡기고 딸의 개인 코치로 나섰다.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경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밤새 분석했고, 성능 좋은 총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다녔다.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민지의 예민한 감각과 김씨의 정성이 합쳐져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쏘자 외국 총기 회사에서 "실탄을 지원해 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김씨는 "저 잘 되라고 싫은 소리도 하는데, 아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민지가 대뜸 말을 받았다. "왜 몰라. 다 알아. 진짜 열심히 해서 올림픽 금메달 딸 거야."

글.사진=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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