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주식 도사도'벤처는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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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뉴로제넥스㈜ 의 최대주주인 한동구(46.사진)이사는 1990년대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다. 증권가에서 꽤 이름을 날렸다. 물론 한 때 주식투자 실패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큰 돈을 벌었다.

한 이사는 "주식이 잘될 때는 10번 투자하면 9번은 수익을 냈다"며 "지금은 직업적으로 주식 투자를 하지 않지만 아직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주식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한 이사는 벤처붐이 한창이던 2000년에 벤처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주식으로 번 돈과 친구들의 돈을 합해 자기자본금 50여억원 규모의 회사를 차렸다. 바로 바이오벤처인 뉴로제넥스다. 그는 자금을 대는 전주(錢主)역을 맡았다. 기술 개발은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 등이 했다.그러나 한 이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으로 돈 버는 것보다 벤처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기술진은 국가연구과제 수주 등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 수익을 내는 일에는 관심이 적었다. 아직도 투자자들에게 과실을 나눠줄 형편이 아니다"며 2년 전부터 경영에 본격 참여한 배경을 설명했다. 뉴로제넥스의 지난해 매출은 약 6억원.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고 세포 재생 능력이 탁월한 단백질 화장품 원료와 화장품(상품명 '보뜨')도 선보였다. 화장품 원료는 올해부터 스위스 다국적 기업인 시바 스페셜티 케미컬즈와 국내 화장품 업체에 팔고 있기도 하다. 상당수의 바이오벤처들이 매출과 실적이 극히 미미한 것에 비하면 그 다지 나쁜 경영성적표는 아니다. 그러나 자본 시장의 흐름을 20여년간 지켜본 한 이사에게는 초라한 실적이다. 그는 "주식 투자를 했다면 이런 매출액은 몇차례의 거래로 벌 수도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매출이 영 안 오르자 한 이사가 나섰다. '신약개발과 함께 생활 속의 바이오 상품을 개발하자'며 만든 것이 '보뜨'다. 그는 회사에서 안살림을 맡고 있다. 월급은 100만원이다. 그동안 월급을 받지 않다가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주위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사원 중 가장 작게 받는 사람 만큼 받는다. 대외 활동비 등은 전액 사비로 쓴다.

한 이사는 "돈을 아껴쓰고 엉뚱한 일을 벌이지 않아 자금 걱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술과 상품을 개발해 놨어도 판로를 개척하기 어려워 고민"이라고 말했다. 뉴로제넥스가 개발한 피부 재생 화장품은 주름살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 화장품의 원료인 펩타이드나 단백질은 뉴로제넥스가 직접 만든다. 이미 써 본 사람들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그러나 여느 벤처기업처럼 뉴로제넥스도 큰 돈이 들어가는 광고판촉은 엄두를 못 낸다.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출 여력도 없다. '주식의 귀재'인 한 이사가 경험한 벤처 경영의 어려움은 국내 벤처들의 속앓이를 대변하는 듯했다.

글 =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 =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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