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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회,창립30주년 맞아|해방이후의 역사 연구업적 총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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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학계의 연구업적을 총정리, 그 현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모색하는 한 공동연구가 때마침 37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역사학회(회장 노명직)가 창립3O주년을맞아 벌이는「기념연구」이기도한 이「사학사연구」에는 한국사부문에 김정배 (고려대·고고학분야) 신형식(이화여대·고대사분야) 하현강 (연세대·고려사분야) 한영우 (서울대·조선전기분야) 김용덕 (중앙대·조선후기분야) 신용유 (서울대·근대분야) 교수, 동양사부문에 이성규 (서울대) 신승하 (단국대) 교수, 서양사부문에 이상신(전고려대) 허명식(성균관대)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역사학회는 이「사학사연구」와 함께 해방 이후 발표된 역사관계 논문총목록집도 작성, 늦어도 9월까지는 펴낼 예정이다.
한국사중 해방후의 고고학분야 연구성과를 살펴본 김정배교수는 7O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고학은 아주 다양한 국면을 맞고 있다고 실명하고 연구인원의 증가와 주제의 다양함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제강점하 일인들의 정체론적 한국사관으로 인해 발굴된 유물들은 자체 발전의 정당한 산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고 실명한 김교수는, 한동안 스며든 일제의 학문상 영향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고고학의 이론과 방법론에 대해선 해방 후 전혀 무관심했으나 7O년대에 들어와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는 단계라고.
김교수는 한반도에 구석기시대와 문화가 존재함을 입증한 유적·유물의 발견 (석장리·전곡리등) 은 우리학계가 거둔 커다란 성과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신석기문화를 고찰할 때는 주변국가들의 연구성과를 한층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학계의 최대의 성과는 아무래도 일인들에 의해 공백의 시대로 간주됐던 청동기시대와 문화에 대한 연구라고 실명한 김교수는 우리나라 철기시대의 개시연대가 낙낭군 설치보다 이르다는 것은 토광묘 연구에 의해 분명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앞으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고고학상의 유적·유물이 차지하는 위치와 뜻이 가능한대로 밝혀지는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방 후 고대사분야를 검토한 신형식교수는, 일제하의 고대사 연구는 극소수의 민족사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항일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됐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해방 이후 부터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50∼60년대는 식민사관의 극복에 일관했으나 일제관학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 날수 없었고 고대사연구의 새로운 전기는 60∼70년대로서, 주체적인 입장과 연구방법론의 혁신으로 고대사 연구의 건립을 맞게 됐다는 것.
신교수는 80년대엔 앞 세대의 연구성과와 문제점을 극복, 보다 새로운 방법론의 다양해 및 역사인식 쪽의 확대가 요구된다면서 사회과학의 방법론은 물론 국문학·민속학·종교학등 인문과학과의 연결도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하현강교수는 해방이 별로 관심을 끌지못했던 고려사연구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최근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라고 밝히고 제도사 내지 제도사적 연구가 주축을 이루는 반면 대외관계 부문은 부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고려사 연구의 현단계를「연구 설계가 겨우 끝난 단계」정도로 본 하교수는 현재 압도적 연구 경향인 실증적 방법을 취하는 연구내용과 함께, 사관·역사해석 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용덕교수는 해방 후 이루어진 국사학의 장족의 발전은 조선 후기에 집중된 느낌이 었다고 설명했다.
개화사상의 원류로서의 실학사상, 공장제 수공업을 탄생시킨 단계까지 발달한 상공업의 발달, 활기찬 상민의 생활문화 로서의 서민문화등 알찬 결실을 보고 있는 이 시대 연구는 모두 이른바「정체성론」의 부정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태동을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
김교수는 초선 후기의 지방통치의 실태, 정부와 지방세력과의 관계 연구에 80년대 학계의 관심이 짐중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으로 해방 이후 근대사 연구(1860년대∼1945년) 의 자취를 살펴본 신용도 교수는, 이시대 연구는 한편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학문을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의 합리화로 써먹은 일제의식민주의사관과 학문적 투쟁을 전개해야 했으며, 또한편으론 진실을 밝혀내어 엄격한 과학으로 정립해야하는 양면의 투쟁을 전개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개화사상·동학사상·위정척사사상 연구와 개항·갑신정변·동학난·갑오경장·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국학운동·3·1운동 연구등 연구실적의 현황과 문제점을 검토한 신교수는 그간의 상당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연구해야할 부분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자기가 살고있는 시대와 가장 가까운 시대의 자기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역사가 제구실을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현재와 미래도 더밝게 만들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신교수는 앞으로 사료의 수집·정리, 주제별 집중·심층연구, 사회과학과의 협동 및 공동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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