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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세계적 공연장 볼쇼이 극장 무대 우리 손으로 꾸미게 돼 가슴 설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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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백조의 호수''지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우리 손으로 만든 무대에서 공연된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최근 개.보수 작업에 나선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무대 설비 공사를 수주한 무대장치 전문업체 쟈스텍의 원수만(69.(右)) 회장.원한수(40.(左))사장 부자는 지금도 수주가 확정된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볼쇼이 극장은 1776년 건립된 이후 처음으로 개.보수 작업을 하기로 하고 지난해 세계 무대장치 전문업체들을 상대로 경쟁 입찰에 나섰다. 총 공사 규모는 2억 유로(2500억원). 쟈스텍은 조명기구 등 무대 장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지난해 10월 입찰서를 극장 측에 제출했다. 쟈스텍은 5월 31일 독일의 기계.설비 업체인 보쉬와 공동으로 이 공사를 따냈다.

수주액은 1900만 유로(약 220억원)였다. 전체 공사비의 약 10분의 1 규모지만 세계 무대 장치업계에 쟈스텍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납품하는 장비에 쟈스텍 자체 브랜드인 'JASS'를 붙이기로 한 것도 수확이었다.

볼쇼이 극장은 2007년까지 개.보수작업을 마무리짓고 2008년 재개장할 예정이다.

쟈스텍은 2002년에 중국 선전(深?)콘서트홀, 항저우(杭州) 오페라 하우스 무대 장치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세계 공연 무대 장치 분야에서 국내 기업이 대규모 수주를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업계는 쟈스텍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버지의 실무 기술력과 아들의 해외 시장 개척능력이 합쳐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기계 부품업을 하던 원 회장은 67년 동양방송(TBC) 스튜디오에 조명장비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무대장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예술의전당, 호암아트홀, 워커힐호텔 가야금홀, 롯데월드 예술극장,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부산올림픽 기념생활관, ASEM 컨퍼런스홀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공연장 무대장치도 이들 부자가 시공했다.

해외 시장의 중요성에 눈 뜬 것은 아들 원 사장이었다. 국내시장의 규모도 한 원인이었지만 세계적인 무대장치 업체로 키워 보려는 야심 때문이었다. 대기업 컴퓨터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다 쟈스텍에 입사한 그는 중국을 첫 공략 대상으로 삼고 2000년에 중국사무소를 개설했다.

원 사장은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실적이 없어 한때 이민까지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원 회장이 "결국 기술이 말해줄 것"이라며 아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이들 부자는 항저우 오페라 하우스 무대 설비 분야를 수주하면서 해외 공사에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쟈스텍의 기술력은 인정했지만 해외 실적이 없는 것을 이유로 마지막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 회장이 직접 중국으로 갔다. 그는 중국 공무원들을 만나 수십 년 동안 기계를 만져 울퉁불퉁해진 손을 보여 주며 "내 손을 믿어주시오. 내가 살아온 인생입니다"고 설득해 결국 공사를 수주했다고 한다.

글=하지윤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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