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손철주 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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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人間長見畵 老去恨空聞

 살면서 늘 그려진 것만 보고

 늙도록 듣기만 해서 한이라

 此生隨萬物 何路出塵?

 한평생 잡사를 따라갈진대

 어느 길에서 속기를 벗어날까

- 두보(712~770) ‘관이고청사마제산수도(觀李固請司馬弟山水圖)’ 중에서

삶에서 탈속은 어려우니
옛 그림 보며 속기 털어내네

직업적 관점에서 우리 옛 그림을 본 지 20년째 되던 해, 내가 정말 그림을 즐기고 있나 회의가 들었다. 그림은 그저 그려진 것에 불과하니 불가(佛家)에서 말한 것처럼 꿈이자 헛것이요, 물거품이 아닌가 싶었다.

 평소 팩스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인 소설가 김훈 선배로부터 어느 날 두보(杜甫)의 이 시 한 편이 날아들었다. 그림에 빠져 사는 나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바라보던 선배가 일종의 훈계로 보낸 글이었다. 삶의 직접성을 상실한 채 늘 남이 그린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소문을 들으면서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를 겨우 유지하는 자의 실존적 슬픔을 고백한 시라는 해설이었다. 그 처방으로는 ‘한평생의 잡사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을 내려주셨다.

 나는 생각하기를 인간이 탈속(脫俗)을 말하지만 대부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속기(俗氣)를 털어내는 쪽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유가(儒家)에서 그림은 속기를 지우려는 흔적이니, 거속(去俗)의 방식으로 옛 그림을 보면 되겠다 싶었다. 그로부터 그림 보기는 나의 수행의 한 방편이 되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