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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20년 전 기술 배운 회사와 한판 붙는 '유리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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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KCC 이시무 박사가 KCC연구소 여주분소 실험실에서 열을 차단하는 특수유리인 로이유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KCC 제공]

이시무(45) KCC 유리연구소장(KCC 연구소 여주분소장)은 사내에서 유리박사로 통한다. 1979년 서울대 요업공학과에 입학한 이 박사는 86년 건축자재회사인 ㈜금강에 입사한 이래 20년간 유리 연구에만 매진했다.

금강은 87년 판유리를 생산하기 위해 이 박사 등의 연구인력으로 팀을 만들어 유럽 등 해외연수를 보낸 뒤 88년부터 유리 생산을 시작했다. 금강은 2000년 계열사인 고려화학㈜과 합병, 금강고려화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올해는 사명을 KCC로 바꿨다.

이 박사는 요즘 유리를 통한 에너지 절약법을 전파하느라 분주하다. 유리 하나만 바꿔도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유리를 로이 유리(저방사형 유리)라는 특수유리로 바꾸면 뜨거운 열을 반사시켜 열기를 50% 가까이 차단할 수 있다고 이 박사는 말한다. 로이 유리는 여름에는 외부 열을 차단해 냉방효과를 높이고, 겨울에는 실내 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 난방효과를 극대화해 에너지 사용을 줄여준다. 고유가 시대와 잘 어울리는 유리인 셈이다. "독일에서는 90% 이상이 로이 유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보급률이 2%에도 못 미칩니다. 집 지을 때 콘크리트는 단열재를 쓰면서 유리를 통한 에너지 손실에는 왜 둔감한지 모르겠어요."

KCC는 3월부터 로이 유리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주로 건설업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어 아직 소매점에서는 유통되지 않고 있다. 가격도 일반유리에 비해 4~5배 비싸다.

이 박사는 젊은 시절 투명한 유리의 특성에 매료됐다고 했다. "바윗돌을 녹여서 만들었는데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유리 만드는 공정을 보면 신기하고 경이롭습니다." 유리는 자연에서 가장 흔한 원료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안전하면서도 전량 재활용이 가능한 환경 친화적 제품이다. 이 박사는 "유리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는 "플라스틱이 유리를 일부 대체하고 있다고 하지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다시 유리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박사는 요즘 LCD.PDP 등의 기판으로 사용되는 고품질.무결점유리를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CC는 자신들에게 20년 전 유리 기술을 가르쳤던 '스승'인 프랑스 생고뱅그룹과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생고뱅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KCC와 국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유리의 최대주주가 됐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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