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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인 사기, 개인적 일탈 행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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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버너드 매도프(左), 제롬 케르비엘(右)

버너드 매도프(76) 전 미국 나스닥 회장. 자신의 이름을 딴 증권회사를 운영하며 한 때 ‘월가 최고의 거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9년 650억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가 들통나 구속됐다. 150년형을 선고 받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제롬 케르비엘(37) 전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 트레이더. 엘리트 은행원으로 젊은 나이에 거액을 주물렀다. 하지만 2007년 말 불법 선물거래로 49억유로(약 7조원)의 손실을 내고 은행을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올 초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지난 9월 가택연금 조건으로 가석방됐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잊을만 하면 대형 스캔들이 터진다. 그때마다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월가 인사들을 ‘살찐 고양이(fat cat)’에 비유하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금융인들의 일탈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무슨 짓을 하든 돈만 벌면 된다’는 업계의 비뚤어진 문화가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대 경제학과 앨라인 콘 박사 연구팀은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실험에서 이같은 결론을 내리고 20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핵심은 ‘금융인들에게 ‘직업적 정체성(identity)’을 환기시켰을 때 부정직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세계적 대형 은행에 다니는 은행원 128명을 모아 실험을 했다. 이들의 근무 경력은 평균 11.5년이었다. 절반은 프라이빗 뱅킹(PB), 자산 관리, 트레이딩 등 금융업무를, 나머지는 리스크 관리와 인사 등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실험 대상 은행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게만 직업과 관련된 질문을 했다. “현재 어느 은행에서 일하나” “은행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등이었다. 다른 그룹에게는 “1주일에 TV를 몇 시간 보나” 등 직업과 무관한 질문만 했다.

 이어 모든 참가자에게 1인당 10번씩 동전 던지기를 시켰다. 동전 앞·뒷면 중 이기는 쪽을 미리 정해 알려주고, 이기는 쪽이 나오면 회당 20달러씩을 주기로 했다. 단 이긴 횟수가 절반 이상이어야 돈을 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동전을 던지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다. 참가자가 온라인으로 결과를 알려주도록 했다.

 실험 결과 일반적인 질문을 받은 그룹의 승률은 51.6%였다. 이에 비해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은 쪽은 승률을 58.2%로 높게 보고했다. 이들 가운데 약 10%는 동전을 10번 던져 10번을 다 이겼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통계 분석을 통해 실험 참가자의 26%가 동전 던지기에서 지고도 이겼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직장인 133명, 대학생 222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봤지만 은행원처럼 뚜렷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은행원들에게 ‘사회적 지위는 금전적 성공으로 결정 된다’는 생각을 얼마나 지지하는 지를 물었다.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룹의 지지 비율이 일반 그룹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또 그런 사람일수록 동전 던지기 승률을 높게 보고했다.

 연구팀은 “금융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풍토가 은행원들의 부정직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시키듯 은행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느끼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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