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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의료·간병 수요 늘어나는데 … 자동차만 찍어낸 게 아베노믹스 패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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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베노믹스가 소비세 발목에 잡혀 사실상 좌초하면서 일본이 다시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에 나섰지만 소비침체라는 역풍을 맞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소비세 추가 인상(8→10%)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연구해 온 이지마 다카오(飯島高雄·46·사진) 긴키(近畿)대 경영비즈니스학과 교수에게 디플레이션의 원인과 대책을 물어봤다.

 -일본은 어쩌다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됐나.

 “디플레이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해서다. 산업구조(공급)가 수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인구동태의 변화도 고려해야 하는데 저출산·고령화를 생각해봐라. 소비를 이끄는 자동차·가전제품 같은 내구소비재 수요는 증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갈수록 위축된다. 그런데 공급 은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 게다가 수입도 넘쳐난다. 수요 부족과 공급 초과 상태가 만성화하면서 디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새로운 수요가 나올 텐데.

 “의료·간병·보육 서비스와 관련해 큰 수요가 기대됐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면서 잠재적 수요를 이끌어낼 비즈니스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

 -양적완화가 효과를 못 낸 것도 규제 때문인가.

 “일본은 장기간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금융완화를 해왔지만 기대만큼 수요가 늘지 않았다. 돈이 돌기 위해서는 내구소비재가 잘 팔려야 하는데 공급은 계속 과잉 상태고 수요는 포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의료·간병·보육 분야가 규제에 가로막혀 수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돈을 풀어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엔저(低)가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는 없을까.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원재료비 상승이 그 효과를 상쇄하고 만다. 그러니 물가가 조금 올라봤자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진다. 주가가 올라 주식을 갖고 있는 가계는 소득이 올랐지만 역시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큰 폭의 수요 증가는 기대할 수 없다.”

 -아베노믹스의 결정적인 패착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개의 화살 가운데 금융완화와 재정확대라는 두 개의 화살은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한 대책이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 불황 대책이 필요한 때다. 그러니 두 개의 화살은 산업구조를 전환시킬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그러니 디플레이션을 해소시킬 수 없다.”

 -저성장을 겪 는 한국에 타산지석이 된다면.

 “일본에 디플레이션 해소에 필요한 정책은 세 번째 화살로 불리는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전략이다. 한국도 과감한 산업구조 전환이 있어야 저성장에서 탈출해 디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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