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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기 바닥 장기 불황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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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 수준이 바닥을 헤매면서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시중에 넘치는 돈이 금융권에서만 맴돌 뿐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내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정한영 박사는 "상반기 중에는 경기 회복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앞으로 부도 업체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재정지출 확대, 금리인하 등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업 체감경기 바닥=한국은행은 연간 매출액 25억원 이상인 1천7백여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제조업 업황 경기실사지수(BSI)가 지난달 77에 불과해 기준치(1백)를 크게 밑돌았다고 5일 밝혔다.

BSI는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가리키는 지표로 이 지수가 1백을 밑돌면 경기가 나빠졌다고 응답한 업체가, 좋아졌다고 답변한 업체보다 많다는 뜻이다.

제조업 업황 BSI는 지난해 4분기 96에서 지난 1월 80으로 뚝 떨어졌으며 지난 2월부터는 3개월 연속 70선에 머물러 있다. 다만 지난달 BSI는 지난 3월(72)에 비해선 약간 높아졌다. 이달 BSI 전망치는 84로 지난달 전망치(75)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지는 속도가 다소 주춤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경기가 좋아지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당분간 경기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자금사정 급속히 악화=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부도 업체수는 5백7개로 2001년 1월(5백32개) 이후 2년3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부도 업체수는 전달(3백96개)보다 1백11개나 늘어난 것이다. 경기가 나빠 장사가 잘 되지않는 데다 금융회사들이 신용도 낮은 업체들에 돈 빌려주기를 꺼리면서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급속히 악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SK글로벌 사태 이후 기업이 금융시장에서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기업들은 지난달에 기존 회사채 4조2천억원을 갚고 새로 2조7천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해 1조5천억원어치의 회사채를 순상환했다. CP시장(증권사 중개물량 기준)에서도 상환이 발행보다 3조3천억원이나 많았다.

삼성투신운용 박성진 팀장은 "SK글로벌 사태 이후 투신사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투신사들이 새로 회사채.CP를 사기는커녕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CP의 상환을 요구해야 할 처지"라며 "현재 회사채.CP 시장은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돈이 급해진 기업들은 은행 대출창구로 몰려가고 있지만 은행들은 창구 문턱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우리은행 윤상구 중소기업전략팀 부장은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해선 만기가 돌아오면 일부 상환이나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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