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6) 밀양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씨는 김씨·이씨와 함께 우리나라 3대성의 하나로 인구는 약4백만명. 이중 밀양 (밀역) 박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70∼80%로 박씨의 주류를 형성한다. 「밀박」은 박씨의 주축을 이룰만큼 파도 많고 자손도 많다.
밀양박씨의 시조는 신라54대 경명왕의 아홉 아들중 첫째인 밀성대군 언침.
경명왕은 그의 아들 9명중 8명을 계림8도(신라전국)에 봉군케 했는데「밀박」의 본관인 밀양(옛이름=밀성)은 언침이 봉받은 고을 이름이다.
「밀박」은 언침의 후대에와서 문하시중궁(이름=언부)파, 도평의사공(언재) 파, 밀직부사공 (양언) 파, 좌복사공(언인)파, 판서공 (천우)파, 사문진사공 (원) 파, 규정공 (현) 파,충위공 (박척) 파등 크게 12파로 분류된다.

<박씨의 70∼80%>
그러나 『밀박은 파를 따질것 없이 신라시조왕 박혁거세를 유일시조로 언침을 중시조로 섬기는 한할아버지의 자손으로서 가장 순수한 혈통의 배달겨레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고 신라오능보존회장 박용보씨(박씨대종친회장· 유성모직회장) 는말한다.
시조왕이 개국한 신라가 5천년민족사상 최초로 3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했으며 가장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밀박」의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
고려 문종때의 문하시중 박언학, 고려중엽의 사문진사 박원, 거의 같은 시기에 여진의 난을 평정해 충헌공의 시호를 받은 박척등은 이땅에 밀박의 뿌리를 굳게 드리운 중추적 인물이다.
이 후대에와서 「밀박」 의 번성을 기록하면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로 규정공 박현이었다. 그는 고려중엽 문과에 급제, 벼슬이 사료규정에 올랐던 인물로 오늘날 「밀박」 의 70∼80%가 그의 후손들이다.
박현의 후손으로 여말∼이조초에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은 박강생·심문부자.
강생은 고려말 문과에 급제, 집현전 부제학등을 역임한 당대의 문장이요, 그의 아들 심문은 이조 단종주에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사건에 탄로나자 음독자결로 충절을 지킨 절신이다.
세종17년 문과에 급제, 벼슬이 좌삼하에 이르렀던 박중손 (강생의손자) ,단종1년 문과에 급제해 중종반점에 참여한 공으로 정국공신이된 박건등은 모두 박현의 후손들.
박충원은 밀박이 낳은 대유학자. 그는 명종21년 이퇴오의 후임으로양관(양관)대제학에 오른다. 양관대제학이란 예문관· 춘추관의 대제학을 이르는 것으로 이는 가문의 영광이오 , 자랑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 줄을 그어도 흥망의 굴곡이 있는법. 그것은 한씨족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밀박」 의 명·암을 기록하면서 빼놓을수없는 인물은 박승종. 그는 광해조때 영의정에까지 올랐던 인물. 그의 손녀가 광해의 며느리(세자빈)었다. 이렇듯 그는 왕실과 밀접한 인척관계에 있으면서도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반대, 광해의 폭정에 반기를 들었던 명신이다.
그는 인단반점으로 광해군이 물러나자 손녀를 광해의 며느리로 삼아 가문의 권세를 누렸다는 사실을 자책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권력의 정상이라할 영상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폐모론에 반대했고 역사의 순리앞에 죽음으로써 속죄한 한 노신의 기개는 정치권력이 바뀔때마다 보호색으로 변신하는 오늘날의 일부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려주는듯 하다.
박연은 「밀박」이 배출한 유명한 악성. 우리나라의 3대악성이라면 고구려의 왕산악과 신라의 우늑, 그리고 이조의 박연을 꼽는다. 그만큼 그는 우리음악의 발전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인물로 피리의 대가였다. 박연은 태종∼세종∼문종의 3대에 걸쳐 벼슬을 했는데 계유정난(계유정난=수양대군이 김종서등 원로 신하들을 없애고 정권을 잡은 정변) 때 아들 계우가 화를 입어 멸족의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그는 삼조에 기여한 공로로 화를 면하고 고향인 영동으로 낙향, 피리소리에 묻혀 여생을 보냈다.
박제가는 영조·정조때에「밀박」이 배출한 실학의 대가. 박척의 18대손인 그는 나이 19세때 연암 박지원의 문하에서 수업했으며 문명이 높아지면서 무관 (무관) 의 사절로 중국에 자주 왕래했다. 이렇게중국을 왕래하면서 배운 신학문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 유명한『배학의』 다.

<보학대가 박제가>
박제가는 이 책을 통해 생활기구의 개선과 농구및 농사의 개량문제를 비롯, 과거제도의 쇄신, 생산의 장려등 정치·경제·사회제도의 전반적인 모순을 파헤쳐 서정의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오늘날 사회개혁의 대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말 『서점쇄신』 은 이때부터 뿌리를 내린듯.
「밀박」은 이조에서 총2백61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한다. 이는 전주이씨,안속김씨,파간윤씨,남양홍씨,청주한씨,광산김씨에 버금가는 숫자로 랭킹8위. 이렇게 문과급제자가 많다는 것은 그 씨족의 총체적인 역량(가능성)의 크기를 평가하는 좋은 척도다.
그러나 이조에서 「밀박」 이 배출한 상신(영의정 박승종)과 대제학 (박충원) 은 각각 1명뿐이다.
이는 이조5백년의 정치권력구조에 「밀박」 이 깊숙이 참여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이같은 이유를 박재호씨(박씨대종친학사무국장) 는 『신라왕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이씨왕조에 충성하는것을 선듯 허락지않았을 것이며 이왕조 또한 신라왕족을 권력의 정상에 등용하기를 은연중 꺼려했기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한다.
박세화·박병애등은 국운이 기울어 가는 구한말과 한일합방이후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써 항거한 우국열사들.
박세화는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되었다. 그후 석방되었으나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자결했다.
박병하는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의국의 노예가 되느니 깨끗이 죽는길을 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단식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국열사.
해방후 「밀박」 은 기라생같은 인물들을 배출한다.
박충동 (전국무총리서리· 전대롱령권한대행) 박병권 (전국방부장관) 박경원 (전내무부장관· 10대국회의원)박주병 (전보사부장관) 박찬현 (전문교부장관) 박제환 (전농림부장관) 박림항 (전건실부장관) 박동진 (전외무부장관· 국회의원) 박희하 (전장공부장관) 박진문 (농수산부장관) 박빈긍(총무처장관) 박영수(전서울시장)씨등은 관계의 인맥들.

<국희의원 41명배출>
충동씨는 미군정당시 약관 20대에 상공부상역국장으로 관계에 첫발을 디딘이후 상공부장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10·26사태이후 격변기에는 국무총리서리와 대롱령권한대행을 역임한 관계의 거물.
병권씨는 5·16직후 애편, 국방장관을 지내다 군정연장에 반대, 장관직을 물러난 강직한 성품의 3성장군이다.
경원씨 또한 창군에 참여했던 3성장군. 그는 5·16이후 3차례의내무장관과 체신·교통장관등을 역임했다.
박두병 (전두산그룹회장· 작고) 박병규 (전해태제과사장) 박전직 (화신산업사장) 박룡학 (대농그룹회장) 박인천(금호그룹회장) 박남규 (조양그룹회장) 박용보 (유성모직회장) 박성형 (신나교역·수산회장) 박세정 (계동산업사장) 박승복(샘표식품사장) 씨등은 재계에 우뚝선 거목들.
두병씨는 해방후 일본인이 경영해온 기린맥주를 인수, 오늘의 0B맥주를 탄생시킨 장본인.그는 맥주회사의 총수이면서도 맥주를 반 컵밖에 못마시는 소주가(소주가·?) 이기도했다.
현 두산그룹회장 용곤씨는 그의 장남이다.
병규씨는 해방되던 45년 약관 20세에 해태제과를 설립, 제과왕국을 이룩한 식품업계의 원로.
현 해태제과 사장 건배씨는 그의 장남이다.
전식씨는 지난31년 우리나라 벡화점의 원조라할 유명한 화신백화점사장에 오른후 60년대 한국재계를 주름잡아온 노장. 그는 지난81년 경영난으로 회사가 부도를 낸후「화신재기5개년계획」을 세우고 동분서주, 노익장을 과시하고있다.
용학씨는 55년 대한농산 사장에 취임한후 60년대 한국 연방업계를 주도해온 윈로경영인.
박대선 (신박· 전연세대총장) 박철웅 (법박· 전조선대총장) 박종홍 (철박·전서울대대학원장) 박명? (의박·전서울대치대학장) 박술음 (문박· 전외국어대학장) 박길상 (철박· 전원광대총장) 박기혁(경박·전연세대상경대학장)씨등은 「밀박」이 낳은 석학들.
대선씨는 64년 연대총장에 취임한후 75년 학원소요로 물러날때까지만10년6개월을 총장직에 있었다. 그는 총장직에서 물러난후 거처할 집이없어 퇴직금4백50만원으로 전세집을 구하러 다녔던 청빈한 학자로 유명했다.
「밀박」은 해방후 총41명의 국힉의원을 배출했다. 전직으로는 박순천 (전민중당대표최고위원· 2·4·5· 6· 7대국회의원) 박한상 (6·7·8·9대국회의원)씨등이 두드러진 인물.
순천씨는 「밀박」 이 낳은 여장부. 그녀는 일제하인 1919년 독립운동을하다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해방후 대한여자청년단장·민중당 대표최고위원등을 역임, 숱한 남성 정치인들속에서 야당의 거목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당정치사의 산증인이다.
현직 국회의원으로는 박유재 박윤종 박권흠 박재욱 박동진 박익주 박태준 박경석 박종관 박현태 박원탁(이상 민정당) 박관용 박완규 박병일 (이상 민한당) 박정수(무소속)씨등 15명.
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박노영대장은「밀박」이 배출한 4성장군이다.<김릅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