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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강정호·밴헤켄 … 넥센은 ‘별들의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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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98%.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시상식에서 넥센 선수들이 차지한 득표율이다. 유효표 99표 가운데 서건창이 77표, 박병호가 13표, 강정호가 7표를 얻었다. 외국인선수 밴헤켄은 20승을 거두고도 한 표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삼성의 밴덴헐크에게 돌아간 2표를 뺀 97표는 넥센 선수들의 몫이었다.

 불과 5년 전 만해도 넥센은 선수를 팔아 구단을 운영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은 넥센 이장석(48) 대표이사를 향한 비판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2008년 현대 선수들을 인수해 창단한 넥센(당시 히어로즈)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대표는 ‘네이밍 스폰서’ 유치 등 국내 스포츠엔 생소한 경영 기법을 통해 모기업 지원 없이 독립적인 구단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기 비용이 많이 들자 이 대표는 간판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했다. 2009시즌 이후 장원삼을 25억 원에 삼성에 팔아넘겼다. 이택근을 25억 원에 LG로, 이현승을 10억 원에 두산으로 보냈다. 구단 운영에는 숨통이 트였지만 전력 약화는 피할 수 없었다. 2008년 이후 넥센은 하위권(7위-6위-7위-8위-6위)을 맴돌았다. 당연히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궁지에 몰렸을 때도 이 대표는 당당했다. 이택근과 장원삼을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받을 때도 그는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그의 말을 믿는 야구인은 거의 없었다. 2010년 이후에도 이 대표가 주도하는 트레이드는 계속됐다. 이번엔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데려왔다. 2군 선수, 신고 선수에게도 많은 기회를 줬다. 투자 전문가 출신 이 대표는 버려진 돌 가운데서 원석을 찾으려 했다. 사연 많은 원석들은 그라운드에서 보석으로 재탄생했다. 넥센의 선수층은 두터워졌고, 전력도 강해졌다.

 넥센은 지난해 창단 후 올해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14년은 더 빛났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패했지만 챔피언 삼성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설문조사 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넥센을 응원한 팬이 57%에 이르렀다. 삼성의 4년 연속 통합우승을 바란 팬(34%)보다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넥센의 선전을 기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넥센이 배출한 MVP 후보 4명은 모두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성공한 선수들이다. LG에서 2군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았던 만년 유망주 박병호는 2012·2013 홈런왕과 MVP를 차지했고, 올해도 홈런왕에 올랐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한국에 온 밴헤켄 역시 메이저리그 문턱에서 번번이 실패만 했던 선수다. 서건창은 넥센이 발견한 보석이고, 강정호는 아무리 어려워도 넥센이 지킨 보석이다.

 시상식에 참석한 이 대표는 “평범한 선수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서건창이 보여줬다. 누구나 노력하면 그 댓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만약 서건창이 2012년 신인상을 받고 퇴보했다면 우리 팀도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서건창이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최고가 된 것처럼 우리 팀도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시리즈의 아쉬움은 다 잊었다. 내년 시즌을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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