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테이프 후폭풍] 도청 '등장인물' 전전긍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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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안기부 불법 도청과 대화 내용 유출에 관련된 사람들은 27일 언론의 취재를 피해 잠적하거나 취재를 거부했다. 당사자의 가족 등도 취재진에게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가 26일 공개한 자술서에 등장하는 '전 안기부 직원 A씨'는 주거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A씨는 공씨와 함께 1998년 국정원에서 면직됐던 임모(58)씨로 밝혀졌다. MBC 기자에게 불법 도청 자료를 넘겨준 혐의로 27일 검찰에 긴급체포된 박인회씨를 공씨에게 소개했던 인물이 바로 임씨다. 공씨에 따르면 임씨는 박씨와 함께 도청 자료를 약점 삼아 삼성을 압박하고,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자신의 복직을 부탁하는 등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 임씨의 가족은 이날 자택에 취재 기자가 찾아가자 보안업체 직원을 통해 "얼씬거리지 마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미림팀에 관여했던 옛 안기부 직원들은 기자들의 전화 통화 등 접근을 피하고 있다. 공씨와 친분이 있었던 전 안기부 직원들 역시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며 불법 도청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나 박지원씨 등 이번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들도 두문불출하고 있다.

사정 당국이 박인회씨와 MBC 이상호 기자를 연결시켜 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박모씨는 27일 현재 "도청 테이프나 녹취록에 대해선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으며 박인회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10년쯤 전부터 아는 사이이고 불법 도청과 관련된 내용을 들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공씨가 입원 중인 분당 서울대병원 입원실에는 가족이 왕래하고 있으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병원 측은 "공씨는 봉합수술이 잘 끝나 금식 중이며 2주 후면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씨는 전날 자술서를 남기고 자해하기 직전까지 국정원 등을 상대로 자신에 대한 구명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의 한 친척은 "공씨가 사법 처리를 피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씨의 다른 측근은 전날 공씨는 박인회씨가 공항에서 국정원 직원에게 연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인 오후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박성우.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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