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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신 실크로드를 장악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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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다. 덕분에 우리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세계 경제영토의 73%를 확보하게 됐다. 거의 전 세계와 자유무역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엮는 ‘신 실크로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실크로드 전략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도 있다. 실제 19세기 미국 서부개척 시대, 동서횡단 철도를 건설한 철도업자보다 철도를 이용해 교역을 한 상인이 더 큰 부를 쌓았다. 누가 실크로드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루트를 잘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기회보다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먼저, 우리 제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대량생산된 중국의 저가 제품이 우리나라에 물밀듯이 밀려올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벌써 7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우리 수준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저가 생산기지가 아니다. 중국 기업도 섬유·의류 등의 분야에선 싼 인건비를 찾아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산업 구조는 이미 변하고 있다. 저가 제품에서 고가 제품으로, 단순 제조업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이 고도화되고 있다.

 오히려 우리 제조업이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수출도 많이 하지만 수입도 많다.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 잘 살펴보고, 우리가 그 분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품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패션·화장품 등이 그것이다. 전략만 잘 짠다면 중국은 우리 제조업에 엄청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우려는 농·축산업, 식품 등 우리 먹거리 산업이 위태로워 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중국사람도 중국산 식품에 별로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소득이 올라가면서 믿고 살만한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먹거리 산업은 오히려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산 분유가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식품의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도 확인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마다 서울우유를 실은 배가 인천을 떠나 청도에 도착한다. 그 우유는 직접 각 가정에 배달되고 있었다. 우리 제품은 안전성과 신뢰도가 높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

 세 번째는 이미 G2인 중국이 우리 경제를 붕괴시키지 않을까하는 위기 의식이다. 하지만 이웃으로 가난한 중국이 나을까, 아니면 잘사는 중국이 나을까? 잘 사는 중국이 옆에 있어야 우리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EU 회원국 중 최빈국에 속하는 루마니아도 1인당 GDP가 1만 달러 수준이다. 반면 아프리카 맹주인 이집트는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하다. 잘 사는 주변국과 교역을 하다 보면 함께 잘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세계의 공장 정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을 큰 소비시장으로 보면, 우리나라 경제의 큰 지평이 열린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절반만 되도 중국의 GDP는 미국의 2배가 된다. 13억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때문이다. 이런 큰 시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게 부족한 산업은 프리미엄급 제조업, 패션과 같은 창조적인 산업과 서비스 산업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가 선정한 보건의료·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 등 5대 서비스 산업이 대표적인 육성 대상이 될 수 있다.

 한·중 FTA 타결을 기폭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영토가 넓어졌다. 기회는 늘 있다. 원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기회인지 빨리 간파해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기업,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위기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보이지 않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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