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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이스라엘"…미 중동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지·슐츠」의 등장으로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지금 한창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중동사태에 대한 미국의 기본정책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조짐이다.
어쩌면 미국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대 중동정책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궤도를 달릴지도 모른다는 가정은「슐츠」가 벡텔이라는 회사를 오랫동안 이끌어 왔다는 배경에서도 읽을 수 있을 뿐더러 미상원의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표명된 「슐츠」자신의 견해에서도 거의 확인되다시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벡텔회사는 세계 각국의 큼직한 건설공사를 도맡아 하고 있는 미국 굴지의 건설회사다.
워싱턴의 지하철 건설공사에서부터 한국 등 해외에서의 원자력발전소·수력발전소 건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공사 등 대규모 공사를 도급 받아 사세는 날로 번창해 가는 회사다.
벡텔은 또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AWACS기 판매문제 때도 대단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81년 한해 동안의 총 매상고는 1백 14억 달러 규모나 되며 총 매상의 50%는 해외공사로 벌어들인 돈이다.
특히 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각국과 오랫동안 밀착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해외공사의 절반정도는 중동에서 이루어질 정도가 됐다.
「슐츠」는 이러한 벡텔 회사의 사장 직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그 자신이 아랍각국의 실정을 이해하고 개인적으로도 아랍지도자들과 상당히 친밀한 교분관계를 다져온 인물이다.
「슐츠」는「와인버거」국방장관,「데이비스」에너지성 차관에 이어 3번째로 벡텔에서「레이건」행정부의 각료급으로 뽑혀 온 인물이 됐다.「슐츠」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의 인준청문회 때 자신의 대 중동관을 솔직하게 그리고 분명히 밝혀두었다.「슐츠」는 우선 미국이 대 중동정책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이스라엘과 아랍권을「동등하게」대해야 한 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문제의 레바논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들의「합법적 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슐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PLO 문제협상 때는 반드시 팔레스타인인 대표가 참석해야 한다』고 밝히고「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정착촌을 건설한 것이나 서안의 민선시장들이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쫓겨난 것은 부당하다』면서 이스라엘 측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스라엘 로비이스트들이 득실거리는 미 의사당내의 공개 청문회에서 행한 이 같은「슐츠」의 발언은 가위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슐츠」의 이 같은 태도에 참다못한 친 이스라엘파인「루더·보슈위츠」상원의윈(공화·미네소타주)이 몹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질문을 계속하자「슐츠」는『능력 있고 부지런한 팔레스타인들은 지금 갈곳이 없다』고 응수, 좀처럼 물러서지 앉았다.
「슐츠」는 또 PLO 문제해결도 시급하지만 앞으로 중동협상 때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문제도 함께 거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불만에 차있던「조젭·비든」상원의원이『당신은 국무장관직을 그만두면 또 벡텔 회사로 돌아가겠는가』고 비꼬았으나「슐츠」는『나는 스탠퍼드 대학에도 아직 교수로 갈 자격을 갖고 있다』면서『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자유인』이라고 응수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슐츠」의 현실적인 입장에 대해 모든 상원의원들이 경의를 표했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지도 사설을 통해「슐츠」가 PLO 문제를 스스로 거론하고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점령을 비난한 것은『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훌륭한 판단』이라고 격찬할 정도였다.
워싱턴 포스트는「슐츠」가 청문회과정에서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변화를 시사한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슐츠」의 대응에 대해 아랍권이 상당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있는데 반해 미국내의 유대인 세력과 친 이스라엘 로비이스트들은 상당한 경계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슐츠」는 기본적으로 자신이「레이건」의 충복임을 다짐하면서 미국의 대소정책(곡물수출금지·파이프라인문제 포함), 무기통제정책, 중남미정책 등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유독 중동정책에만은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슐츠」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친 이스라엘 정책을 고수해온 미국의 대 중동정책은 상당한 진통과 개편과정을 겪을 것이고 중동의 기상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변화를 맞을 것 같다.
【워싱턴=김건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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