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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제대로 읽는 재팬] 오키나와의 반란 … “본토 깨부수자”는 후보가 지사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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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키나와 지사 선거를 앞둔 8일 주민들이 후텐마 미군 기지의 이전 예정지인 헤노코 기지 앞에서 철수를 주장하며 시위하고 있다. [헤노코=김현기 특파원], [지지통신]
오나가 다케시

16일 실시된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지사 선거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외친 야당 후보가 승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오키나와 남부의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를 북부 헤노코(邊野古) 연안으로 이전하려는 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75) 후보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세계적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USJ)을 오키나와에 유치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놨지만 소용없었다.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64) 전 나하(那覇)시장이 압승함에 따라 일 정부와 미국 간의 기지 이전 약속 이행조차 불투명해졌다.

 이달 초 방문한 오키나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핵심은 미군기지였다. 오키나와의 면적은 일본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그런데 일본 내 미군기지 시설의 74%가 몰려 있다. 오키나와 총면적의 18.3%가 미군 몫이다. ‘이전’한다고 해도 오키나와 안에서 빙빙 도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분노의 화살은 ‘일본 본토(오키나와에선 ‘야마토’라 부른다), 그리고 미국으로 향한다. 이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우치난추(‘오키나와인’이란 방언)란 말도 실은 본토에 대한 적개심의 발로다. 500년간 ‘류큐(琉球) 왕국’을 유지하며 중·일·미 사이에서 버텨 온 굴곡의 역사, 이후 각종 차별 대우가 낳은 오키나와의 비극이다.

 7일 오키나와 기노완(宜野灣)시 가카즈공원. 전망대에 올라서자 약 2㎞ 앞의 후텐마 기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일 미군 해병대의 비행기지 거점이다.

오키나와 기노완 도심 한가운데의 후텐마 기지. [헤노코=김현기 특파원], [지지통신]

좁은 녹지공간을 사이에 두고 불과 수십m 옆에 건물들이 즐비했다. 후텐마 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란 소리를 들을 만했다. 2.7㎞ 길이 활주로 옆에는 미군의 수직 이착륙기인 ‘오스프리’ 10대가량이 두 줄로 나란히 선 채 굉음을 내고 있었다. 전망대에 있던 주민에게 “왜 이착륙을 하지 않는데도 오스프리가 엔진을 켜고 있느냐”고 묻자 “성능 조정이란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저런다”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인접 주택가에 산다는 니가키 미쓰오(新垣光男·68)는 “밤새 멈추지 않는 굉음에 늘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다.

 8일 오전 후텐마로부터 차로 약 두 시간 북쪽에 위치한 나고(名護)시 헤노코 미군기지 ‘캠프 슈왑’. 일 정부와 미군이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려는 곳이다.

기지 입구 ‘게이트 1’ 앞에선 100여 명의 주민들이 “매립공사 중단하라”란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스즈키 야스유키(鈴木康之·40)는 “활주로 매립공사를 하면 헤노코 연안에 서식하는 산호와 60여 종의 희귀 갑각류, 국제적 멸종 위기 동물 듀공과 바다거북의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오키나와의 오랜 역사로 볼 때도 더 이상 미군기지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립 예정지 모래사장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쳐져 있는 200m 길이의 철조망에는 ‘듀공이 오는 바다를 지키자’ ‘전쟁도, 기지도 싫다’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마쓰시마 야스가쓰 류코쿠대 교수의 『류큐 독립론』

 오키나와 선거는 최근 독립투표를 실시한 스코틀랜드를 연상케 한다. 오키나와 북서부의 한적한 마을 모토부초(本部町)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만난 시마부쿠로 요시토쿠(島袋吉德·68) 모토부초의회 의장의 말에는 ‘본토’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지자체에는 신칸센(新幹線) 건설이다 뭐다 해서 연간 수 조엔씩 뿌리면서 우리에겐 고작 매년 3000억 엔의 진흥기금을 주겠다며 기지 이전을 수용하라고 하는데 그건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야.” 당선된 오나가 후보의 유세 내용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수백 년을 고생해 류큐 왕조를 지켜왔는데 이제 와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우치난추’가 하나 돼 (야마토를) 깨부수자.”

 오나가의 공약 중엔 ‘오키나와어’ 교재를 만들어 오키나와의 모든 학교에서 가르치겠다”는 것도 있다. 오키나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라지만 궁극적으로 독립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스코틀랜드가 고유 언어인 게일어를 부활시켜 도로 표지판까지 영어·게일어를 혼용한 것과 흡사하다. 상황에 따라선 ‘오키나와 독립운동’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류큐 왕국’의 부활은 ‘친중국적 독립국가’라는 점에서 파장이 클 수 있다. 류큐의 DNA는 중국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류큐 왕조 시대 중국에서 건너와 뿌리를 내렸던 이들의 자손이 지난해 ‘공자묘’를 나하 시내에 세웠다. 오키나와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 또한 크게 늘고 있다.

 『류큐 독립론』의 저자 마쓰시마 야스가쓰(松島泰勝) 류코쿠대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1609년 사쓰마번 침략, 1879년 류큐 처분, 1972년 일본 반환의 세 번에 걸쳐 류큐를 지배하러 왔다. 미군은 1853년 페리 제독의 개항 요구,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두 번에 걸쳐 왔다. 하지만 중국은 오키나와를 지배하러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나하·나고(오키나와)

김현기 기자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한 오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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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차별대우에 주민 분노 표출
“500년 역사 류큐왕국”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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