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롯시」 최고의 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역시 「떠오르는 해」는 「지는 해」를 압도했다. 이탈리아가 서독을 물리치고 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승리는 34년 대회와 38년 대회를 연패한 이래 44년만의 3승. 비록 바뀌어진 대회 규정에 따라 FIFA 컵을 영원히 소유하지는 못하나 모조품을 전달받아 그 영예만은 길이 보존하게 된다.
이탈리아와 서독의 결승전이 벌어진 마드리드의 베르나베우 경기장은 꽉 들어찬 12만 관중의 열기 속에 파묻혔다. 전반전의 중반까지는 두 팀의 거친 태클과 맨투맨 플레이로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았다. 전반 25분 이탈리아를 응원하던 관중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재난」 이 일어났다. 서독 수비의 반칙으로 어렵게 얻은 페널티킥을 「카브리니」가 실축한 것.
이후 두 팀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짙은 청색 상의에 휜 팬츠를 입은 이탈리아 팀과 흰색 상의에 검은 팬츠를 입은 서독 팀은 초록의 잔디 위를 성난 황소처럼 누볐다. 짙은 청색은 지중해 색깔, 검은 색깔은 서독 국기의 검은 독수리. 나라의 상징까지 동원된 혈전이었다.
후반 11분 「롯시」의 다이빙 헤딩슛이 극적으로 성공하자 운동장은 환희와 탄성의 도가니였다. 북소리, 피리소리, 호각소리, 그리고 터질 듯한 함성.
로열 박스의 「카롤로스」 스페인 국왕도 「페르티니」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냈다. 옆자리의 「슈미트」 서독 수상은 그저 덤덤한 표정.
이어 이탈리아는 24분에 「타르델리」가, 36분에 「알토베리」가 2, 3번째 꼴을 터뜨려 3대 0으로 앞서 나갔다. 패색이 짙은 서독 팀은 필사의 역습을 펴 「브라이트너」가 한 점을 만회했으나 게임 종료를 알리는 휘슬소리와 함께 12회 월드컵 대회는 끝났다. 운동장은 온통 초록, 빨강, 하양의 삼색기의 물결.
이번 대회 최대의 스타는 이탈리아의 「롯시」. 1차 리그까지 무득점이던 그는 2차 리그에서 우승 후보 브라질을 3대 2로 격파할 때 해트트릭을 기록, 혼자서 3점을 넣었다. 이어 폴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도 혼자 2점을 넣어 2대 0 승, 결승전에서 첫 번째 꼴을 터뜨려 모두 6득점으로 「롯시」 최고의 해가 되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2년간 출전이 금지 됐던 프로선수의 와신상담의 집념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에 비해 서독의 골게터 「루매니게」는 비운의 스타. 부상한 몸으로 『한발로도 뛰겠다』고 출전한 그는 게임 종료 10분전에 눈물을 머금고 퇴장해야 했다. 5득점으로 2위의 득점 왕 자리를 지킨 채였다.
10억 축구 팬을 열광시킨 잔치는 끝났으나 잔디 위의 스타 탄생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임을 잊지 말자. 서독은 등록된 축구선수가 4백 40만 명, 이탈리아도 1백만 명이나 된다. 이처럼 저변만 튼튼하면 우리라고 세계의 찬사를 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은 둥글다. 따라서 승패도 둥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