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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열 명보다 낫당께” vs “국민이 낸 세금 아니당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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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04면

4일 국회 의원회관의 이정현 의원실에서 이 의원(오른쪽)과 이낙연 전남지사가 지역 사업과 예산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정현 의원 블로그]

13일 오후 전남 순천시 남내동 중앙시장의 한 세탁소. 6.6㎡(2평) 남짓한 공간에서 셔츠를 다림질하던 반동년(56)씨에게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묻자 “열심히 하고는 있지”라며 입을 열었다. “노력하고 있다고 시장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혀. 예산이니, 의대 유치니, 추진하고 있는 갑드라.” 그는 이 의원의 공약 중에서도 “기업 유치가 기대가 가장 크지”라며 “인구가 10만이나 는다고 하니까. 지키기 힘든 공약인 걸 알면서도 기대를 하고 있지”라고 했다.

‘이정현 예산 폭탄’ 지역 주민 평가는

인근에서 만난 이모(84)씨도 이 의원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여게저게로 자주 돌아댕기는 것 같더만. 나도 몇 번을 봤어. 이제까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뽑아줘도 한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그래도 이 양반은 예산이라도 많이 가져올라고 힘쓰는 것 같드만. 민주당 열 사람보다 낫당께.”

비판하는 이도 적잖았다. 과일가게를 하는 김영미(47)씨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올해같이 힘들면 죽지라. 실질적으로 (변화가) 몸에 닿아야 하는데 국회의원 되면서 된 게 뭐 있다요. 한나라당(새누리당) 됐어도 우리 전라도 쪽엔 큰 도움이 안 돼요. 공약대로 안 되니까 문제죠.”

빵집을 하는 한 남성은 국회의원, 시의원 등이 선거 때마다 나눠주는 명함을 모아둔 바구니를 보여주며 불만을 표했다. “다 지들 경력 잘난 척만 하고 말이 너무 많어, 너무. 밤에는 대리운전도 하는데 예전보다 콜도 절반이 줄었당께. 더 열심히 서민들을 위해 이쪽도 활성화시켰으면 좋겠어요.”

“실속 못 챙기면서 장난치면 안 돼”
음식점을 하는 한 여성은 “다들 좋게는 평가 안 하드만. 김무성 내려오고 그런 가식적인 건 피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했고, 택시기사 정모(57)씨도 “실속 챙기지도 못하면서 절대 시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했다.
현실론도 있었다. 윤귀근(68·중앙동)씨는 “민주당 텃밭이다 뭐다 해가지고 공천만 받으면 다 되는 줄 아는 것 바꿔보자고 해서 뽑은 거였고 크게 기대는 안 혀. 이정현 돈이 아니고 국민 세금이 아니당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믿어 줘도 되겠다 하면 뽑아줄 것이고 아니면 안 되제. 어디 속는 것이 한두 번이여?”라고 되물었다.

연향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유모씨는 “이 의원은 의대고, 기업 유치고 하려고 하는데 위에서 안 해준다매. 공약 안 되면 앞으로 국회의원은 없어, 여기에. 예산을 많이 끌어오지 않아도 성의를 보여야지”라고 했다. 다음날 찾은 곡성군 읍내리의 한 뜨개방에서 만난 정모(60)씨도 “이정현이 혼자 갖곤 안 돼”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에서 여태 해가지고 공장이 생겼어 뭣이 생겼어. 여당에서 사람들을 더 내려보내야제. 괜찮은 놈 내려다 보내야제. 촌사람들도 머리가 티였어”라고 했다.

유력 경제인 초청 투자 설명회 러시
엇갈리는 민심에서 드러나듯 이정현표 ‘예산폭탄’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15일로 당선 109일째인 그의 예산 활동을 중앙SUNDAY가 추적해봤다. 현재까지 지역구와 관련해선 ▶주암댐 도수터널 시설안정화 사업(순천)에 13억6000만원 ▶농축산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건립(곡성)에 4억원 등을 확보한 상태다(그래픽 참조). 공약인 ‘순천만 정원의 국가 정원화’와 관련해선 정원산업지원센터 조성 사업에 신규 예산 10억원을 반영시켰다. 이 밖에 곡성군청에선 친환경 전문육묘장 건립(2억5000만원), 3건의 지역 하수 관리 정비와 1건의 상수도 확충(4건 총액 112억여원)에 “이 의원이 도움을 줬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주요 공약이던 ▶순천대 의대 유치(4000억원 이상 소요) ▶대기업 유치로 청년 일자리 대폭 확대 등에 대해선 아직 가시적 실적이 없다. 다만 이증근 순천대 의대 설립추진위원장은 “이 의원이 열정적으로 보건복지부·교육부에 터치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긍정적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18일 순천 의정보고회에서 의대 유치와 관련해 ▶의료 인력 수출 등을 부각하고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이 부족한 것을 감안해 의대를 유치하는 방안 ▶다른 지역의 부실한 의대 정원을 흡수하는 방안 ▶전남대, 서울대 의대 순천 분원,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을 연계하거나 산재병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지역과 함께 의대를 유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대기업 유치와 관련해서도 이 의원 측은 “중견그룹 24곳 대표를 순천으로 초청해 투자 유치 설명회를 했고 기업들과 순천대생 취업 관련 MOU를 체결하고 산업은행 행장 등 금융권 인사를 초청해 지역 기업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전경련 산하 관광 기업 대표를 초청하고 순천만 정원에 대규모 주한 외교사절단을 초청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제2의 에버랜드 호남 유치와 대형 콘도 조성 등도 거론한다. 한때 “자동차 공장 유치를 위해 현대자동차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됐지만 정해진 건 없다.

그의 예산 활동은 지역구만이 아니라 호남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광 지역에 ‘디자인 융합 Micro-모빌리티 신산업 생태 구축’에 65억원을 확보한 것 외에도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한려대교를 해저터널로 건립하는 방안(5000억원 소요 예상), 보성강댐 물을 흘려 보내 섬진강 하류의 생활·공업용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다. 강왕희 수자원공사 부장은 “본래 섬진강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댐 건설을 기획했지만 환경단체가 반대해 추진 못하던 사업이었다”며 “이 의원이 대안을 내놓아 3200억원 정도 예산을 아낀 셈”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활동에 변화를 느낀다는 지방 공무원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오행석 순천시청 투자유치 담당은 “중앙부처와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예산과 관련해 대화 채널이 열렸다”고 말했다. 곡성군청 공무원 서형규씨도 “순전히 이정현 의원 때문에 된 게 몇 가지 있다”며 “그동안 중앙부처에 뭐 해달라고 하면 환영받지 못했는데 이 의원이 통화하면 관심 있게 봐주더라”고 전했다.

“이정현이 다 한 것처럼 비쳐선 곤란”
일각에선 이 의원의 활동에 과한 평가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순천시청 공무원은 “이미 4월 말부터 국가보조금 확보 일정이 들어가는데 사실 의원 당선이 늦었다”며 “당선 전부터 해오던 사업인데 마치 의원이 한 것처럼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새정치연합 예산안조정소위 위원인 박완주(충남 천안을) 의원도 “이 의원이 챙긴다는 예산은 결국 우리 당 의원 예산”이라며 “혼자 무슨 힘으로 챙기겠나”고 했다. 같은 당 이춘석(전북 익산갑) 의원도 “호남이 많이 받는 것도 없는데 오해받고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교통위 예산소위 위원이던 하태경(부산 해운대-기장을) 새누리당 의원은 “새정치연합에선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며 “새누리당 안에선 이 의원 지역이 특수하니 최대한 배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예결위 간사 이학재(인천 서-강화갑) 의원은 “호남 예산을 배려해야 하지만 특정인의 특정 지역 예산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외부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이광재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소외 지역은 배려하되 특정인이 예산을 투하한다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미국에서 소수자 보호 정책을 썼다가 경쟁력이 생김에 따라 혜택을 줄이듯 이 의원의 호남 챙기기도 일정 기간 용인할 수 있다”며 “영남에서 야당이 당선되는 등 지역주의가 더 깨지면 정당들이 텃밭 아닌 지역도 챙길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6만815라는 숫자를 되뇌인다. 나에게 표를 준 이들에게 반드시 보은하겠다는 의미다. 예산을 챙기다 보니 당에서도 ‘혼자 지역구 관리하나, 너무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비교당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호남의 정치 경쟁을 회복시키겠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백일현 기자, 순천·곡성=박종화·송영오 인턴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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