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藥에 항생제 너무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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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코테프 정(스테로이드), 코푸 시럽S.암브록솔정(기침약)'.

지난해 9월 경기도 부천시 모 소아과가 金모(4)양에게 처방한 약이다. 金양의 질병은 감기의 일종인 급성인두염.

그런데도 천식에나 쓰는 스테로이드가 이틀치 처방됐다. 스테로이드는 비교적 소량으로도 소아의 성장을 저해하고 면역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감기 환자에게는 안 쓰는 게 원칙이다.

주로 동네 의원들이 이처럼 감기를 앓는 소아(10세 미만)에게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거나 부작용 때문에 쓰지 못하게 돼 있는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른보다 소아들에게 항생제나 스테로이드를 더 많이 처방하고 있을뿐더러 의약분업 후 약효가 강한 항생제 사용량이 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사들이 항생제를 많이 쓰는 관행이 몸에 배 있고 소아에게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합병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한약사회는 전국 1백37곳의 약국이 2000년 10월~2001년 12월 조제한 4백45만6천여건의 처방전을 분석한 결과를 4일 발표했다.

◇쓰면 안되는 항생제 처방=서울 강남의 모 이비인후과는 감기 환자인 趙모(8)군에게 퀴놀론계 항생제인 오플록사신을 브론콥 등 기침약과 함께 처방했다.

퀴놀론계 항생제는 관절 질환을 일으킬 위험 때문에 소아에게 거의 처방하지 않는 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2%의 소아에게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처방률 1.7%보다 높았다.

서울대병원 李모 교수는 "퀴놀론계 항생제는 이질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소아에게 처방해서는 안된다"면서 "소아 처방률이 어른보다 높은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테트라사이클린 항생제도 0.07% 처방해 전체 평균(0.08%)보다 약간 낮긴 했지만 소아의 이를 누렇게 변색시키고 발육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강한 항생제 쓴다='세파클러캅셀.르라마란정.리나브론캅셀.센티올과립…'.

지난해 11월 서울 노원구 모 의원에서 진료받은 盧모(3)군의 처방전이다. 하루 전부터 콧물과 기침 등의 감기 증세가 있어 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盧군에게 2세대 항생제인 세파클러캅셀을 처방한 것이다.

대한약사회 박혜경 전문위원은 "세파계 항생제는 1세대 항생제인 페니실린계보다 약효가 훨씬 강하다"며 "1세대를 쓰다 듣지 않을 경우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사회 조사 결과 소아에 대한 세파계 항생제 처방률은 61.3%로 전체 평균 51.9%보다 10%포인트 가량 높았다.

◇의약분업 후 되레 증가=분업 이후 세파계 항생제 처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 4분기 소아에 대한 세파계 항생제 처방률은 67.5%로 2000년 4분기(54.1%)에 비해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약효가 상대적으로 약한 페니실린계 항생제 처방률은 24.3%에서 22.4%로 줄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동네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2000년 3월 59%에서 지난해 3월에는 48.4%로 줄었다. 하지만 약효가 강한 항생제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항생제 오남용 감소'라는 의약분업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는 셈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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