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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조화 중시하는 체스, 바둑과 또 다른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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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체스판 앞에서 체스의 장점을 설명하는 이상범씨. 안성식 기자

"체스 세계챔피언은 컴퓨터에 지고 바둑 기사인 조훈현 9단에게도 지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왜곡된 정보가 체스 보급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돼 왔습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부모님들이 바둑이 있는데 뭐하러 그런 것을 배우냐고 하지요."

'체스의 전도사'로 불리는 이상범(49)씨는 국내에서 체스를 보급하며 느낀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15일 발족한 대한체스협회의 창설 멤버 중 한 명으로 체스 교육과 보급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다. 내년도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체스를 보급하고 선수들을 관리할 이 협회는 김봉섭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회장을 맡았으며, 프로 기사 서능욱씨의 부인이자 사업가인 현인숙씨, 전국바둑교실협회 강준열씨 등이 임원으로 참가했다.

"바둑이나 체스를 통해 머리 쓰는 방법을 배운다는 현실적 목표에 너무 집착해 게임은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체스는 체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고 바둑도 바둑의 장점이 따로 있지요. 딱 잘라서 어느 게 더 좋다고 비교하려는 사고가 문제입니다."

그가 체스가 바둑 못지않게 장점이 많은 게임이라고 말한다. 체스는 161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한 국제기구가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돼 있다. 킹과 퀸, 룩과 비숍, 나이트와 폰 등 여섯 가지 기물들을 이용해 전투를 벌인다.

"체스는 기물들의 조화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독불장군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또 상대의 킹을 제압하는 경기지만 상대가 승복하기 전에 킹을 잡아버리면 도리어 반칙패가 됩니다. 경쟁자라도 막다른 골목으로는 몰지는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체스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최근 체스 동호인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의 과외활동에서 체스를 배우려는 학생과 바둑을 배우려는 학생 수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협회 측은 국내 체스 인구를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

1999년부터 사단법인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에서 체스 지도자를 육성해온 이씨의 본래 직업은 바둑 사범이다. 기원 등에서 36년 동안 바둑을 지도해왔다. 세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이 불편한 그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화전을 일구는 바람에 초등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다.

바둑은 스님이었던 할아버지(법명 산운)에게 배웠다. 할아버지는 화전 가까이 있던 법당에서 속연(俗緣)의 손자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한학을 가르쳤다. 글 읽기를 따분해 할 땐 중국의 바둑 교습서 기경(棋經) 13편을 읽히며 함께 바둑을 두었다.

그는 바둑 실력이 3급(현재 아마추어 2~3단)쯤 되던 13세 때 상경해 기원에서 사범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17세 때는 아예 자신의 기원을 차렸다. 81년부터는 삼육재활원에서 장애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바둑에 인생을 걸었던 그가 체스에 빠진 것은 88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외국 기자들이 체스하는 것을 처음 보면서였다. 외국 교재 등으로 체스를 독학한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국내 체스계의 손꼽히는 고수가 됐다.

왕희수 기자 <goma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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