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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는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스라엘은 아랍권의 분열과 정치무기로서의 석유의 위력감퇴를 보고 레바논침략에 자신을 얻었던 것 같다.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아랍국가인 시리아가 비 아랍국가인 이란을 지원한 것은 아랍결속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보다 앞서 아랍권은 캠프데이비드합의와 이집트-이스라엘 단독평화조약을 놓고 강경파의 거부전선과 온건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침략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레바논에 2만 명 이상의 아랍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시리아다. 바로 그 시리아가 이란지지로 아랍권에서 고립되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같은 온건파 아랍산유국들로부터 충분한 원조를 받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반체제운동이 「아사드」대통령의 정부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 행동의 자유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략하여 이렇다할 저항을 받지 않고 엿새만에 베이루트의 문턱에 당도하여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있다.
PLO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것 같다. 레바논 남부에 있던 서부지구사령부, 중앙지구사령부, 남부지구사령부는 거의 괴멸 상태에 빠져 있다. 1만5천명의 PLO게릴라 가운데서 서부 베이루트에 남아있는 병력은 6천명정도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PLO 잔존세력의 레바논철수가 이스라엘 군 철수의 조건으로 흥정되고 있는 것이다. PLO의 「아라파트」의장은 베이루트에 남아있는 게릴라의 완전괴멸을 막기 위해서 PLO의 레바논철수와 일부 게릴라의 레바논 정규군편입에 동의할 뜻을 비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있는 가운데 막후협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라파트」에게 허용되는 선택의 폭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게 확실하다.
협상에 실패하면 PLO를 기다리는 운명은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다. 하나는 이스라엘군의 최후의 일격을 맞고 사실상 해체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바논북부의 산악지대나 지금
시리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베카 계곡으로 일단 후퇴하여 전열을 정비하는 일이다.
이집트는 PLO수뇌들의 이집트망명을 종용하고 있지만 PLO 내의 강경파의 반발이 그런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
PLO는 70년 요르단 내전 때는「후세인」왕의 공격을 받고 요르단을 떠나야하는 굴욕을 당했다. 76년 레바논 내전 때는 레바논 좌파와 연합하여 우파를 누르고 레바논을 완전히 장악하기 직전에 시리아의 개입과 방해를 받아 남쪽으로 패주하는 불운을 당한바 있다.
이번 경우도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이나 자치실현의 과정에서 겪는 기복의 하나로 생각할 수가 있지만 문제는 이집트의 아랍공동 전선 이탈과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 서안병합으로 형세가 4백50만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PLO의 괴멸을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말살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여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향의 설움을 동정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치나 독립국가를 돌려주지 않고는 중동에 평화가 실현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온건파의「아라파트」가 이끄는 PLO가 해체되면 과격파인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이 한층 잔인한 수법의 테러를 가지고 등장할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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