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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수퍼파워 자격증 받은 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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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인구 10억4000만 명, 국토 한반도의 15배, 국내총생산 5150억 달러, 연간 경제성장률 8% 이상의 핵보유국. 인도는 분명히 수퍼파워의 조건을 갖춘 아시아의 대국이다. 인구 13억 명에 국내총생산 1조1000억 달러로 수퍼파워의 길을 한 발 앞서 걷고 있는 중국과는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다. 중국 견제를 아시아정책의 주요 내용의 하나로 설정한 미국 부시 정부가 인도를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그건 직무태만일 것이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워싱턴 방문 결과는 아시아 지역 국제정치의 지각구조에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과 44개 원자력 공급국가 그룹은 인도에 일체의 핵 에너지와 원자로 부품 수출을 금지해 왔는데 싱을 맞은 부시 정부는 이 금지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에는 강수를 쓰는 부시가 인도의 핵무장을 기정사실로 인정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들어가지 않은 인도는 하루아침에 '핵클럽'의 회원이 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두 가지 조치를 취하면서 인도에 핵 지원을 약속해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아시아 이웃나라들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재계는 중국 국영기업이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을 185억 달러에 인수하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아시아에서 패권경쟁을 시작했고, 미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핵에너지 기업들에는 방대한 시장 하나가 굴러들었으니 부시 정부로서는 일석이조다.

인도에 대한 핵 지원 정책은 국내외에서 무원칙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시가 인도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면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회가 명분론을 가지고 반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부시의 핵에 관한 이중잣대가 미국에 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의회도 정부 조치를 승인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부는 44개 원자력 공급 국가 설득도 자신하고 있다.

인도 국내의 반응은 상반되는 두 갈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기자는 뭄바이발 기사에서 군사적으로 큰 잠재력을 갖고, 경제적으로 역동적이고, 아시아 지역에서 발언권을 행사하고, 독자노선을 걷는 인도를 경량급 수퍼파워라고 불렀다. 그러나 냉소적인 반응도 무시할 수 없다. 뉴델리 정책연구소(CPR)의 바라트 카르나드는 '아시아 시대'에 쓴 글에서 인도를 남의 나라의 코트 자락에 매달려 무사안일에 빠진 나라, 물 위에 떠다니는 코르크처럼 알맹이가 없는 덩치 큰 소국이라고 냉소했다.

우리에게는 인도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미국과 중국과 인도라는 세 마리의 수퍼사이즈 고래가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벌이는 힘겨루기에서 한국 같은 나라에 밀려 올 파장이 문제다. 미국이 마음먹고 중국을 견제하면 한국에는 부담이 된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요, 중국은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한 가까운 이웃이다. 북핵 해결에는 미국과 중국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당장은 6자회담이 잘 안될 경우 미국의 이중적인 핵 정책을 북한이 핵무장의 구실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예술에 가까운 외교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도전이다.

다행히 여기에도 양면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면 할수록 두 나라는 한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처럼 일본이 고립의 길을 가면 한국의 존재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말썽 많던 균형자론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4차 6자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지난 세 번의 회담에 비해 중국의 역할이 줄고 한국과 미국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컸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새로 형성되는 미국.중국.인도의 삼각관계는 아시아의 기존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런 새로운 질서의 큰 틀을 배경으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우리의 좌표를 세워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