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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비상경제조치」충격요법에 이견도 많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 16」청와대회담 이후 청와대와 기획원당국자 및 민정당은 유별난 접촉을 해왔다.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들이 서류봉투를 들고 기획원 청사를 바삐 드나드는가 하면 김준성 부총리는 이른 아침 시내 호텔에서 여당당직자와 회동하거나 집무실에서 당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다.
김 부총리는 개각직전까지 나웅배 전 재무부장관과도 몇 차례 밀담을 나누었다.
나 전 장관은 6·28 조치에 관한 준비협의에서 금리의 대폭인하 등 충격적인 정책선회에 강력 반대했고 「6·28」주역과는 심한 언쟁까지 했다는 후문도 있다.
정부일각에서 6·28조치의 준비를 본격적으로 서두른 것은 해외건설업체의 존폐에 관한 위험신호가 몇 차례 온 것과 때를 같이했다. 지난7일부터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업계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김 부총리는 기업인들로부터『안정을 위해 경제를 이대로 죽일 것이냐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정부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사실은 대부분의 기업이 더 이상 투자의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김 부총리는 이러한 일련의 경제현상을 분석해서 이 달 중순에 전 대통령에게 특별보고를 했다 한다. 이때 전 대통령은 지수 상으로는 경기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물경제는 왜 그렇지 못한가를 묻고 가능한 방법을 연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때 당초 수행하기로 했던 김재익 경제수석이 여행일정을 취소한 것도 경제활성화 방안마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초부터 이 작업은 경제기획원에서 주로 야간을 이용해 관계부처회의가 소집되는 등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한은 관계자들도 자주 불려왔다.
「6.24 」개각이 있을 때 각 경제부처들은 사실상 몹시 긴장해 있었다. 실물 경제 팀의 핵심 멤버인 경제기획원장관과 재무부장관의 진퇴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나 전 재무장관은 개각발표 몇 시간 전 까지 김 부총리와 모종의 협의를 하고 있었다. 유임이 될 것으로 추측되었던 김 부총리는 이날 하오 IECOK (대한국제경제협의회) 총회 참석 차 출국인사를 위해 청와대로 갔다. 개각발표가 있기 2시간 전이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전 대통령에게 출국인사대신 「6·28」조치의 골격을 상세히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당초에 보고하기로 했던 예산정책을 뺀 채 1시간동안 특별보고를 했던 것에 대해 모종의 조치가 강구되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개각으로 모두가 들떠있던 분위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갔다.
그는 장관임명소식을 들은 지 20여분도 채 못된 강경식 신임 재무부장관을 불러 오랫동안 뭔가를 협의했는데 이것이 「6·28」조치의 세부계획마련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주 동안 협의과정에서 이런「충격적」인 조치가 과연 타당한 결정이냐에 대해 이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초치는 일사천리 식으로 추진되었다. 조치의 실무작업은 관계부처장관 및 한은 총재가 했으나 기본골격은 청와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활성화 정책의 전환을 요구한 민정당은 정부가 제시한 이번 조치의주요 골격에 대해 합의형식으로 통보 받았을 뿐 실질적으로 당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 여인 어음사건을 완전히 마무리짓고 민심수습을 위해 주초에 특별담화문이 있을 것으로 알려졌던 지난26일에는 이 계획이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6일 정오 김 부총리는 강 재무장관과 김재익 경제수석 및 이번 조치의 실무를 맡은 하동선 기획원차관보와 함께 삼청동 모 음식점에서 점심을 들었다. 이들은 이때 특별담화문 대신 경기활성화조치를 28일에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약간 상기된 채 청사로 돌아온 김 부총리는 이날 하오 관계자들을 다시 소집 보도 자료를 만들도록 지시하고 민정당파의 당정협의회에서 주요내용을 통보했다.
이번 조치의 주역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김 부총리는 『물론 나』 라고 답변했다. 엊그제까지 충격적인 조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았느냐고 되묻자『물가안정에 확신이 섰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조치의 내용이 거의 전부 재무부 소관인데도 재무부는 별도로 설명자료를 만들지 않고 기 획 원의 발표 자료를 갖고 강 장관이 설명했다.
6· 28조치가 누구의 작품이냐 란 질문에 취임 사흘 밖에 안된 강 장관은 『김 부총리와 나』라고만 할뿐 더 이상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보도자료가 기자들에게 배부했을 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엄청나다는 표정이었다.
27일 저녁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도 자료를 받아본 위원 중에 아연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한다.(최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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