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내각과 민심수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청와대 3당 대표회담 때 기약되었던 장 여인사건에 대한「추가인책 개각」이 24일 하오 단행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유창순 국무총리를 퇴진시키고 그 후임에 김상협 고대총장을 기용했으며, 사건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재무 및 법무 등 3부 장관도 경질했다.
갱질 각원은 4명으로 지난번 「5·21 개각」 때의 11명에 비해 폭은 작지만 국무총리가 포함되어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각은 각별한 뜻을 지니고있다,
개각내용을 발표하면서 청와대 대변인은 『국내외적으로 해결해야할 국가적▲ 문제가 많은 현시점에서 내각의 진용을 바꿈으로써 새 내각이 심기일전, 소신 있게 국정을 펴나가도록 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의령참사, 장 여인 사건 등 잇단 메가톤 급 사고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을 일신하겠다는 결의를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신임 김 총리는 20년 전 잠시 문교장관을 역임했을 뿐 오랫동안 학계에 있으면서 후학육성에 힘써온 사람이다. 뿐더러 그는 역대 총리 가운데 최초의 호남출신이기도 하다.
국민의 참다운 여망이 무엇이며, 청년층의 생각이 과연 어떠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란 기대는 그래서 가는 것이며 내각에 새 이미지를 심어 준 것도 그 때문이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대통령중심제인 정부에서 총리의 직능에는 자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임명된 총리는 실무형 내지는 관료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김 총리가 어떤 정치적 행정적 솜씨를 보여줄지는 미지수일수밖에 없지만, 전환기 때면 으레 하마 평에 오르내렸다는 점에 비추어 정부안에서 그의 역할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지지 않을까.
새 내각이 지금부터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고 경제질서를 정상화해야함은 물론, 장 여인사건의 충격으로 멍들고 흐트러진 국민들의 허탈감과 좌절감을 깨끗이 씻어주는 일이 그것이다.
경기회복과 민심수습은 기실 한가지 사실의 표리와 같다. 경제의 정상화로 시민생활의 리듬이 회복되면 그것이 바로 민심을 안정시키게 될 것이며, 반면 국민들이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의욕을 가질 때 그것은 경기회복의 활력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세 차례 개각에서 문교 등 2명만이 잔류하고 전 각원이 바뀜으로써 적어도 인사면 에서는 내각이 총 사퇴한 셈이 된다.
정치적으로는 「마지막 처방」이란 말이 나오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물론 사람을 가는 것만으로 당국이 풀리는 것은 아니며 개각은 난국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새 내각에는 국민의 기대만큼이나 부담도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보면 6· 24개각은 사태의 마무리가 아니라 사태수습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 및 정당활성화를 비롯해서 청와대회담 때 거론된 정치활동규제자의 해금문제 등 정치적인 문제는 새 내각이 직접 용훼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문제들이 완전히 국무위원들의 영역 밖일 수는 없다.
행정과 정치의 분리가 현대국가 경영의 원칙이기는 하지만 각원은 행정적인 차원보다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정치적 시각에서 국정을 운영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경위야 어떻든 장 여인 사건으로. 빚어진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렵다. 김상협 내각에 맡겨진 과제는 바로 그 어려운 현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난국을 풀어 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풍로」 의 조성이다. 정부의 어떤 말도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풍토에서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의 발전은 기약되지 않는다. 정부가 신뢰를 쌓으려면 성실한 자세로 국민을 납득시키는 길뿐이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당장 ·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백 마디 미사여구가 아니라 한가지 알맹이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천인 것이다.
공직자 모두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을 때 국민이 정부를 믿는 신뢰풍토는 차츰 자리를 잡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신뢰회복 및 이를 위한 정부의 겸허하고 성실한 자세야말로 지금우리가 직면한 난국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임을 거듭 강조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