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서울과 워싱턴간에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다짐하는 덕담들이 풍성하게 교환되었다. 한미수교 1백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미국에서는 「부시」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 측에서도 지도급 인사들이 미국을 친선 방문하여 두 나라의 우호 무드는 가위 절정에 이른 듯 싶다.
이범석 외무장관의 방미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외라거나 전례 없을 만큼의 기대를 모으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한국에서 새사람이 외무장관이 되면 미 국무 장관하고는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양쪽의 기본입장을 확인하는 「의식」을 갖는 게 보통이다.
더군다나 「헤이그」장관은 원래 수교 1백주년을 계기 삼아 한국을 방문하기로 작정되었다가 포클랜드 전쟁으로 유산된 것을 생각하면 오는 29일의 한, 미 외상회담은 논리적이고 시기 적절한 것이다.
이번 워싱턴회담에서는 동북아시아안보현황이 검토되고 미국의 대한군사차관의 증액과 조건개선, 그리고 한, 일 경협 교섭에 미국이 맡을 수 있는 역할 따위가 토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의 큰 변화를 고려한다면 이번 한미외상회담은 눈앞의 현안문제들과 올해의 각별한 우호무드를 뛰어넘는, 한-미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만 서구 한 지역만을 보아도 북한을 승인하려는 움직임이 사회당세의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거나 멀지 않 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같은 얘기는 한국과 동구권, 한국과 비동맹 권에도 해당된다.
결국 이런 추세는 4강에 의한 남북한의 교차승인과 그 뒤에 오는 한반도의 긴장완화, 남북화해로 수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의 전개에 대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한-미간의 의견 조정이라고 하겠다.
얼핏 생각하기에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가져오는 사태나 절차에 한-미간 이해의 충돌이나 견해차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식적인 얘기로 미국이 한국과 방위공약을 맺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미국자신의 전략적인 이해 때문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한다면 이제는 우리도 교차승인이나 남북대화에 대한미국의 입장이라는 것이 과연 지난30여 년 동안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여겨온 그런 성질의 것인지 한번쯤 의문을 제기해 볼만도 한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 한국의 전략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한반도의 현상동결에 대한 미국과 다른 주변국가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문제를 따져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당장의 군사차관 몇억 달러 더 받아 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미국의 대한지원은 당연한 것이거나 항구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다할 장기적인 비전 없이 대미관계를 지켜왔고 한-미 관계의 척도는 언제나 원조액수였던 것이다.
이런 근시적인 자세는 국제환경이 이상 더 용납하지 않는다. 전두환 대통령의 아프리카순방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외교의 다변화, 외교적인 독자노선의 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유엔이나 비동맹회의에서 한국관계결의안에 던져지는 표가 많고 적은데 우리가 일희일비하고 북한을 승인하는 우리의 우방이 한 두 나라 늘어나는 것을 한국외교의 큰 재난이기나한 것처럼 흥분하면 시대는 막을 내리고있다.
새시대의 외교는 의연한 자세로 분단상황의 개선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추진 할 수 우리만큼의 국력과 국제적 지위는 강화되었다고 본다.
워싱턴외상회담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재검토해 보고, 미국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외교자세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 국제적인 환경의 요구인 것 같다.
우리도 미국을「가슴」(heart)으로가 아니라 「머리」(head)로 대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