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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 속 뿌리내린 '최태원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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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 최태원 회장(오른쪽에서 셋째)이 그룹 직원들과 어울려 맥주 건배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요즘 직원들과 이런 자리를 자주 갖고 있다. 여기서 직원들이 경영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한다. [SK제공]

지난달 초 경기도 용인의 SK 그룹 연수원(SK아카데미) 1층 대강당. 그룹의 부.차장급 간부들 교육이 진행되던 이 곳에 최태원 SK회장이 들렸다. 최 회장은 무려 세 시간 동안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SK텔레텍을 팬택에 꼭 넘겨야 했습니까."(그룹 간부 사원)

"SK가 갖고 있으면 (규제 때문에) 연간 단말기 생산 120만 대짜리 업체밖에 안됩니다. 기업의 미래를 생각해 결정했습니다."(최태원 회장)

"신문에 팬택 측과 술을 마셨다고 났던데요."(다른 간부 사원)

"권유에 못 이겨 딱 한 잔 했습니다."(최 회장)

직원들은 거침없이 묻고 최 회장은 숨김없이 답했다. 최 회장은 지난 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이상 SK아카데미에 들러 직원들을 만난다. 울산의 정유 공장, 지방 주유소 등도 찾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분식회계 사태와 소버린의 경영권 도전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 회장의 경영사고가 많이 달라졌고 임직원의 애사심과 단결력도 한층 강해졌다"고 말했다. 직원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영진을 더욱 믿게 됐고, 회사와 오너는 경영진에 힘을 보태 준 직원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SK그룹 직원들은 2004년 3월과 올 3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놓고 소버린과 표 대결을 할 때 전국 방방곡곡의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녔다. 직원들이 발벗고 회사 구하기에 나서자 거래 중소기업들도 힘을 보탰다. SK㈜ 석탄사업부 윤철 과장은 "한때 자금사정이 어려웠을 때 SK제품을 쓰는 중소기업들이 결제일을 앞당겨 현금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본 최 회장은 직원들을 더욱 신뢰했다. 지난 해와 올해 설에는 떡을 마련해 휴일에도 일하는 울산 공장 근로자를 찾아갔다. 임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비서실에만 준비를 부탁해 현지를 방문했다. 또 직원들의 건전한 아이디어는 바로 반영했다.최근 SK가 그룹 사옥의 헬스클럽과 주차장을 직원들이 주말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한 것 등은 직원들이 최 회장에게 건의한 내용이다.

SK는 소버린과의 힘겨루기를 하면서 SK㈜의 사외이사 비율을 70%로 늘리는 등 기업지배구조도 개선했다. 미국의 투자회사 메릴린치는 SK㈜ 에 대한 기업 분석에서 "최 회장이 아니라 이사회가 회사를 운영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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