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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3)제77화 사각의 혈투 60년(51)|김영기|도금봉과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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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복싱의 묘미 중 으뜸가는 것은 뭐니 해도 일발필도의 KO펀치가 작렬할 때다.
강세철이 세인의 인기를 크게 모은 것도 흔히 통렬한 KO펀치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특히 강세철의 KO승은 보통의 것과 도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일거에 대세를 반전시키는 역전 KO승인 것이다.
강세철은 스피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세밀하거나 다채로운 테크닉 같은 것도 부족한 편이었다.
주무기가 좌우 훅 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아들인 허버트 강도 페더급으로선 유례없는 중량급의 펀치를 자랑했던 것을 보면 이들 부자는 타고난 장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피드와 테크닉이 모자라고 대신 강펀치를 가졌으니 강세철의 복싱은 많이 맞는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고 시합을 판정으로 이끌면 -물론 상대가 수준 급의 강자일 경우- 패하기 일쑤였다.
강세철이 일본과 필리핀을 원정했을 때 모두 판정패를 기록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50년대에 강세철의 경기 중 하이라이트는 라이벌 김진국과의 대전이었다.
펀치가 약한 대신 몸이 빠르고 기교가 좋은 김진국과의 대결은 워낙 대조적인 스타일로 해서 흥미 만점이었다.
강세철은 딱 한방의 무지막지한 KO펀치를 적중시키기 위해 상대를 코너로 몰아가며 끈질기게 찬스를 노렸고 김진국은 치고 도망가는 전법으로 점수를 따는 뚝심과 기교의 경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강세철은 무수한 잔 매를 얻어맞는 게 통례였다. 그러나 전회에 소개한 바와 같이 54년8월 강세철은 통렬한 역전 KO승을 장식, 가공할 펀치의 진가를 과시했다.
한방의 승부수룰 노리는 강세철의「도박 복싱」이 극적으로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로 인해 복싱 계에선 강세철의 경기를 가리켜『최후의 1초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생겼다. 따라서 관중은 종료공이 울릴 때까지 강세철의 KO펀치를 줄기차게 기대하게 됐고 자연히 그의 경기는 흥미로운 인기 이벤트가 되었다.
강세철은 평북 강계사람으로 1927년 생. 해방 즈음 부모와 함께 내려와 목포에서 살았고 목포상업을 다닐 때 복싱을 시작했다.
광주출신으로 일본서 아마와 프로선수생활을 한 정봉현(링네임 승전념)의 가르침을 받아 46년 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웰터급)한 후 프로로 전향했다.
서울에선 47년 여름 휘문중 교정에서 열린 김준호와의 8라운드 대전(판정패)이 처음인데 이때의 메인 이벤트는 당대의 강자 송방헌-박용진의 대결로서 김구선생도 관전했다.
이날의 시합(6게임)은『조선권투 왕』이라는 대목으로 촬영되어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 강세철은 데뷔 초기부터 이름을 널리 알리는 행운을 잡았다.
험담을 할 줄 모르는 눅진한 성격인데도 강세철에 겐 일화도 많다.
60년 동양주니어미들급 챔피언 결정전을 서울에 유치한 것은 강세철 스스로 필리핀을 찾아가 교섭한 결과였는데 영어실력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65년「알리」-「리스트」의 세계헤비급 타이틀매치(미 루이스턴)땐 모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견돼 복싱 계의 부러움을 샀으나 경기장에 입장했을 땐「리스튼」의 KO패가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알리」가 너무 빨리 이겨(1라운드 1분)강세철의 수륙만리 출장을 도로로 만든 것이다.
귀국 후 강세철은 주위에『「리스트」는 잘 싸웠다. 그런데「알리」가 더 잘 하더라』고 관전소감(?)을 피력했다.
동양왕자의 명성을 얻은 후 강세철은 2년여 여배우 도금봉과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나이다운 매력에 사교성마저 있어 당대의 명배우를 사로잡을 만한 인물임엔 틀림없으나 이 이색커플의 결합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도금봉은 흔히 강세철의 경기 때 직접 관전할 정도로 한 때의 금슬이 지극했으며 강세철이 61년 10월 한국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김기수의 도전(장충체)을 받아 참패, 비탄에 빠진 일그러진 표정으로 기진맥진한「사양의 호랑이」를 껴안고 퇴장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얘기 거리가 되고 있다.
강세철은 이직 후 도금봉과 헤어졌고 64년과 65년 한국 미들급 타이틀을 건 이안사노와의 연속대전에서 패하고 66년7월 대전에서 또 이안사노에게 7회 기권 패, 복싱일생의 최후를 쓸쓸하게 마쳤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링을 떠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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