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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부투 세세 세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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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60년은 아프리카의 해였다. 이해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콩고인민공화국(브라자빌 콩고)과 벨기에의 통치를 받던 콩고민주공화국(레오폴드빌 콩고)등 17개국이 무더기로 독립했다.
레오폴드빌 콩고, 즉 자이레는 독립한지 1주일도 못돼 폭동, 살육, 분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혼돈의 콩고 현대사를 연출한 주역은 「루뭄바」「카사부부」「촘베」「모부투」.
하도 낯선 이름들이 연일 세계의 매스컴을 장식하니까 미국에선 이들을 주제로 안 차차차 리듬의 팝송까지 생겼다.
『루뭄바 카사부부 차차차/촘베 모부투 차차차.』
제l주역은 「루뭄바」였다. 총선거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한 「루뭄바」가 수상에, 그의 정적인 「카사부부」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루뭄바」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모부투」는 30살의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일찌기 경리상사로 제대한 「모부투」는 신문기자로 전신, 「루뭄바」의 독립사상에 심취돼 그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독립 전야 브뤼셀의 원탁회의에선 콩고의 통일된 독립을 주장하기도 있다.
콩고군의 반백인 폭동을 틈타 카탕가주 수상 「촘베」는 분리 독립을 선언, 대통령에 취임했다. 카탕가는 콩고 남쪽의 주로 동광 등 광물자원이 풍부해 콩고세입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었다. 콩고를 아프리카의 보석고라고 부르는 이유도 카탕가의 존재 때문이다.
카탕가에서의 이권 연장을 바라던 벨기에가 군사 개입을 단행하자 콩고문제는 국제문제로 번졌으며, 수습에 나섰던 「하마슐드」유엔사무총장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했다.
「루뭄바」는 소련의 지원을 얻어 유럽식민세력의 잔재를 일소하려 했으나 「카사부부」의 쿠데타로 추방됐다.
이 때의 주역이 바로 「모부투」. 그는 독립된 콩고가 친 공산화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이후 「모부투」는 콩고군 총사령관에 임명돼 막후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1964년 카탕가주 분리를 바라는 잔존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모부투」는 「촘배」를 수상에 앉혀 위기를 수습한 뒤 1965년 쿠데타를 단행. 「카사부부」「촘배」를 모두 축출하고 전권을 장악했다. 비로소 막후의 실력자가 전면에 부상한 것이며, 4인의 드라머는 이로써 끝났다. 「모부투」는 올해로써 집권 17년째를 맞는다. 자신의 이름도 「조제프·데지레·모부투」라는 유럽식 이름에서 「모부투·세세·세코」의 아프리카 식으로 바꿨고 국호도 자이레로 고쳤다. 수도 이름도 킨샤사로 바꾼 것은 훨씬 전의 일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동광의 국유화, 교통망의 정비, 외국투자의 촉진 등으로 콩고의 근대화에 힘썼다.
자이레의 국토는 2백34만평방㎞, 남북한 면적의 10배도 넘으나 인구는 3천만명이 채 못된다.
전체 수출액에서 동이 57·3%를 차지하고 코피, 다이어먼드, 코발트, 아연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출한다.
자이레는 비동맹 중립노선에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나 국제무대에선 한국을 적극 지지한다. 이번 「모부투」대통령의 방한으로 두 나라의 관계는 돈독해질 것으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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