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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부부-김상기씨 사건 닮은 데가 많다|돈-실력과시로 주위 현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또 터졌다-.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7천억 어음사기 진동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원진 김상기씨의 86억 유용이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다. 7천억 원 대 86억 원. 액수로 비교하면 헤비급과 플라이급 정도의 차이다. 그러나 이·장 부부의 편 취 액수가 가히 천문학적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자기자본 20억 원을 밑천으로 어음쪽지로 돌리고 돌려 늘어난 7천억인데 비해 김씨가 축낸
86억 원은 팔딱팔딱 살아 있는「현금」이란 점에서 일반이 느끼는 감은 오히려 김씨 쪽이 충격적이다. 사기나 횡령 액수에서 받은 충격 뿐 아니라 두 사건 모두가 금융계 울타리 안에서 터졌고 사건의 주역들은 소위 우리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점, 범죄의 배경엔 일확천금의 황금만능주의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많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은행장과 차장>
이·장 부부사건에 임재수 은행장을 제물로 바쳤던 조흥은행은 이번엔 집안도둑에게 86억 원을 물리는 등 2건의 메가톤 급 사건에 말려 쑥대밭이 되었다.
배임수재로 구속된 전 행장 임씨는 이철희 부부의 청탁을 받고 일신제강과 공영토건에 7백33억 원을 부정 대출해 준 혐의. 그는 김씨 건이 터지자 피해액수를 줄여 허위 보고하는 한편 조용히 자체 내에서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다 이철희 건으로 구속돼 조흥은행 만큼이나 재수 없는 사람이다.
이 은행의 명동지점차장이었던 김씨는 4년 전부터 예금주 몰래 예금을 꺼내 쓰다 지난 4월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사나이.

<예금유치 왕>
김씨나 이철희 부부는 전화 한 통으로 수억 원 또는 수십 억 원을 은행에 입금시키는 예금유치 왕으로 알려졌다.
이·장부부가 조흥은행에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한꺼번에 5백억 원의 돈을 예금시켜 준 것이나 김씨가 30억 원을 입금시킨 것이나 똑 같은 의미.
결국 이철희 부부는 사채업자들로부터 예금을 유치하고 은행금리와의 차액 87억 원을 부담했고 김씨는 사채업자들에게 월2·5%의 고액이자로 예금을 끌어들인 뒤 은행금리와의 차액을 자신이 물어주다 몰락의 길을 재촉한 것도 너무나 똑같은 점이다.

<과시 욕>
허세와 과시 욕에선 이철희 부부나 김씨가 막상막하.
강릉상고를 졸업, 말단 은행원에서 출발해 차장 직에 오른 그가 갖고 있는 사회단체직함은 명함이 좁을 정도.
정신이상자 요양소인 박애원 이사장, 원진 프로모션 후원회장, 대한체조협회장, 민예 극장 스폰서 외에 거느린 기업 군만도 원진무역, 원진강건 등 4개 업체.
주위에서는 예금주들의 눈을 끌고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행사와 자선행위 등 요란한 사회활동을「과시」해 왔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최종 꿈인 국회의원에 도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철희가 자신의 전직을, 장영자가 형부 이규광씨의 비호를 받는 양 허세를 부리거나 타인의 사기를 죽일 만큼의 호화스런 생활 등 이 모두 그들의 한-중동 합작은행 설립과 전자회사 설립이란 재벌로의 최종 꿈을 향한「과시」였다는 점 또한 스타일 면에선 다소 차이가 있어도 유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기타 유사점과 차이점>
이철희 부부나 김상기씨나 대재벌에의 꿈은 일치되지만 이들의 허황된 사상누각이 무너졌을 때 대처하는 방안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이철희 부부가 미화 1백만 달러, 일본돈 8백만 엔을 챙겨 사기행각의 막판엔 해외로 도피할 의사가 있었음에 비해 김씨는 모든 걸 자신 하나의 죽음으로 갚으려 했다.
어쨌든 이철희 부부가 사회에 만연된「먹튀」(먹고 튄다)풍조를 대변했고 김씨는「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무책임한 사고방식을 대변했지만 어느 쪽이나 자신들의 행위로 숱한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결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철희·김상기 두 사람 모두 최고 학부를 나오지 못한 채 자신들의 영리한 머리와 특유의 처세술로 금융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점은 같다.
그러나 이씨의 난잡한 사생활이 세상에 밝혀진 대신 아직 김씨에 관해서는 불미스런 주변이야기는 나오지 앉았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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