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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아 번 돈 6천만 원 떼였다"|김상기씨와 손잡았었던「작은 거인」김태식 선수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매맞아 가며 번 돈 6천만 원을 고스란히 날렸습니다.』
「작은 거인」김태식 선수(25·전 WBA플라이급 챔피언)의 말이다.
은행돈 86억 원을 유용하고 지난4월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진 그룹 회장 김상기씨는 바로 김 선수의 후원회장이자 김 선수의 피 맺힌 돈을 떼어먹은 장본인.『링 위에서 피를 홀리며 받은 개런티와 찬조금, 심지어 모델료까지 그에게 맡겼다가 떼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고향선배가 의리를 앞세워 철저히 이용하고 철저히 배신했습니다. 김 선수는 권투선수들이 어떻게 번 돈인데 그토록 무책임하게 집어삼킬 수가 있었겠느냐 며 이미 고인이 된 김씨를 원망했다.
「작은 거인」이 김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79년 7월. 당시 김 선수는 매니저 김 모씨와 금전문제로 듯이 안 맞아 권투를 포기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프로복싱에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고 있을 때 같은 고향선배로서 도와주겠다는 김씨가 무척 고마 왔다.
김 선수의 고향은 강원도 묵 호였고 김상기씨는 강릉이었다.
김 선수는 이때 후원회잔 김씨로부터 훈련비용으로 3백 만원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움이었다는 게 김 선수의 주장이다.
김 선수는 그 뒤 새로운 매니저 김규철씨를 만나 복서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 79년 8월 재기 전을 갖고 80년 2월17일「루이스·이바라」를 2회 KO로 누르고 세계왕좌에 올랐다.
김 선수가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김 선수의 후원회장이던 김씨도 같이「유명인사」가됐다.
그러나 김 선수는 세계챔피언이 된 뒤에도 파이트머니를 만져 보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김씨는 김 선수가 받은 개런티와 찬조금 등을 모두 자신이 맡아 늘려 주겠다 해 한푼도 만져 보지 않고 고스란히 떠맡겼다.
김 선수가 어쩌다가 돈 얘기를 꺼내면 김씨는『너는 권투만 열심히 해라. 돈 문제는 너의 부모님과 상의해서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식으로 미루어 왔다는 것.
김씨는 또 김 선수가 챔피언의 왕좌에 오른 뒤『김상기를 못 믿느냐. 너는 이제부티 돈을 번다. 그러나 얼마나 알뜰하게 모으느냐에 따라 돈을 적게도 벌고 많이도 번다』고 말해 철저히 그를 믿었다는 것이다.
김 선수가 맡긴 돈을 청산해 줄 것을 김씨에게 처음 요구한 것은 80년 12월 2차 방어전에서「마테블라」에게 판정패했을 때였다.
김씨는 이때 김 선수에게 지급기일이 안 적힌 6천3백 만원 짜리 당좌수표를 끊어주고 그 동안 번 돈의 전부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수입내용조차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수표마저 김씨 사망 후 부도 처리돼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김 선수는 김씨가 죽기 3개월 전부터 종종 농담 삼아『애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 이날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김씨가 자살한 후에도 김씨의 부인 신모 씨(39)가『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말해 경찰이 찾아와서야 자살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
하루 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된 김 선수는 김씨의 허욕 때문에 굶주려 가며 번 돈을 모두 날리게 됐다며 자신이 날린 돈에는 개런티와 찬조금은 물론 트럭 광고모델 비까지 포함돼 있었는데 김씨의 장례식이 끝난 후 3백 만원은 부인 신씨로부터 받았으나 나머지 6천만 원은 끝내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살던 서울 연희동 84의1 시가 1억 원의 자택마저 부인 신씨 명의로 돼 있고 김씨 명의의 재산이 한푼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기 전을 위해 김 선수는 연습을 하려 해도 맥이 풀려 샌드백을 칠 수가 없다며 허탈에 빠져 있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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