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도 없이 사극 평할 수 있나…"|5월25일자『주간TV평』란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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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일보 5원25일자『주간TV평』란에 MBC-TV에서 방영된「실록 한미백년」제 하의 본인의 작품이 거론되었기로 그 평자에-.
▲한-미 수호조약은「슈필트」-이홍장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우리는 다만 조인만 했을 뿐 회의에 참석한일 조차 없는데 무슨 근거로 종주권문제에 비굴스런 표현을 했느냐 의 대목.
드라마는 조미조약 최대의 이슈였던「속방」논쟁의 정치배경을 상징화하고 있다. 이동인(개화승·당시 총리 기무 아문 참모 관)이 작성한 조선 측 초안인「의정 약고」를 김윤식이 지참, 천 진으로 가 이홍장에게 제시했으나「속방」이라는 귀 절을 넣지 않았다 하여 퇴짜 당한 일, 이용숙 이응준 어윤중 등 이 천진의 이홍장을 찾아 막후교섭을 벌인「사실」, 그러나 청의 위세에 눌려 이가 초안한 조약을 거부 못하고 청의 개 도에 따라 조약체결의 대권을 위임해 버린 어의(고종 19년2월5일)가 비 굴이며「우리는 다만 초인만 했을 뿐」이란 표현에 걸 맞는 것인가.
▲평양에는 있지도 않은 천주교박해를 끼워「사실을 왜곡」운운의 대목.
대원군의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신도는 수천 명에 이르렀다. 작가가 드라마에 등장시킨 인물은 1866년 8월20일(음7월11일)셔먼호가 초리 방사포구에 정박중(1864년「다뷔지」신부께 세레 받은 조선신도 중)숨어 지내던 지달해 지달수 지달제 지택구 지택명 지택주 장린국 장용국 표영보 등 9명이 셔먼호를 방문, 「트머스」목사를 만났다.
그들은 이 셔먼호 방문사실이 발각되어 전원 체포되고 특히 주모자격인 지달수 지달해 형제는 다음해인 1867년1월22일 평양 보통문밖에서「양 이들과 불법 잠 통했다」는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이건 단대 김원모 교수의 근대 한-미 교섭 사에 있다.
▲갑신정변 때 어전에서 김옥균이 권총으로 내시를 겨누는 장면들도 사극의 본질에는 아랑곳없이 흥미 위주로만 드라마를 꾸민 좋은 보기라는 대목.
그날 경우궁 전상에서 임금을 둘러싸고 서재필 지휘하의 사관생도 13명이「안검시립」하였고 김옥균과 서재필이 장사 패를 호령, 임금을 비롯한 궁녀·왕비·세자·내시 등 수백 인이 보는 앞에서 환관 유재현을 결박지어「정전」에 꿇어앉히고 그 죄목을 따져 가며「난자 살륙」하였다고 돼 있다.
이「난자살륙」이란 사실을 권총을 뽑아 내시를 겨누는 장면으로 처리한 것이 사극의 본질에 아랑곳 않는 흥미위주로 꾸민「보기」란 말인가.
평자는 다시 광성보 격전 끝에 35대3이라는 피 아의 전사자 비율에서 포로의 자결장면을 그렸어야 다큐멘터리 터치에 어울리는 꾸밈이 된다고 했는데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었던 무기의 우열에서 근대(미국)와 봉건(조선)이라는 조선의 비극을 강조한 것인데 드라마의 주제도 못 찍어내는 안목으로 무슨 얼토당토 않는 주문인가. 또 평자는 대원군의 나이가 48세라고 못박고 있는데 순종20년 1820년 생인 대원군이 1871년에 왜 48세인가, 51세다.
평자는 끝으로 작가의「역사인식」이 희박하여 좋은「사극」을 못 쓴다는 투로 작품을 튕겨 내고 있는데….
「역사지식」도 못 다 채워 곳곳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건 누군가.
작가의「역사인식」걱정보다 평자는「자기인식」에서부터 발 분할 일이다.
이은성<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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