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고 김영기 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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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통 한국화단의 마지막 적자(嫡子) 중 한사람으로 손꼽히는 청강(晴江) 김영기(金永基)옹이 지난 1일 오후 9시30분 경기도 용인 수지읍 자택에서 타계했다. 92세.

근대화단의 거장이었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의 큰아들로, 대를 이어 동양화가의 길을 걸었던 청강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을 거치며 혼란에 빠졌던 한국화 분야에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화가로 주목받았다.

일본 유학이 대세였던 1932년, 청강은 그 흐름을 거슬러 중국 베이징의 보인대학으로 유학했다. 중국에서 치바이스(齊百石)를 사사한 그는 귀국한 뒤인 39년 중국 근대 화단의 상황을 정리한 '지나 화단의 조류'를 발표해 미술인이 쓴 최초의 미술 서술이란 기록을 남겼다.

45년 해방 뒤에는 이화여대 미술과에 교수로 임용돼 동양화 교수 제1호가 됐다. 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가 주최한 '현대 한국 회화전'에 고암 이응노.운보 김기창 화백 등과 함께 초대받았고, 60년 동양화 그룹인 백양회의 대표로 대만과 홍콩에서 전시회를 열어 해외에 한국 미술을 알렸다.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청강의 작품 세계에서 주목할 점은 그의 자화미술(字化美術)"이라며 "남해안 일대의 섬 풍경을 그린 해금강 연작과 백두산을 소재로 한 군청 산수화는 한국 미술사에 남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청강은 그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올 봄 본사에 편지를 보내 회고록을 남기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란(80)씨와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며, 발인은 3일 오전 10시. 02-3010-223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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