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9단 홍수 권위 떨어진 '입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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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단(段)은 프로의 외양이자 권위를 상징한다. 특히 9단은 '입신(入神)'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높은 권위를 자랑해 왔다. 그러나 9단은 어언 전 세계에서 170명으로 늘어났고 계속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권위가 점점 더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202명의 프로기사 중 35명이 9단이고, 일본은 435명 중 무려 112명, 비교적 후발국인 중국은 409명 중 22명, 대만은 35명 중 1명이 9단이다. 삼각형 형태가 돼야 할 단 체제가 일본에선 오래 전에 역삼각형이 됐고 한국도 서서히 역삼각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은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무려 13명이 9단이 되어 가장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 바람에 1500년 역사를 지닌 단 제도를 제대로 살려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각에선 단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9단의 증가와 일본 바둑 쇠망론=중국 남북조시대에 만들어진 바둑의 9품제를 일본이 막부시절 현재의 단 제도로 바꿨다. 과거 일본에서 9단은 한 시대에 단 한명만이 존재하는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9단이 계속 늘어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일본에서 통렬한 반성이 일어나기도 했다. 바로 프로기사가 직접 쓴 일본바둑 쇠망론. "일본의 9단은 A급 9단, B급 9단, C급 9단 등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9단의 권위 상실이 일본 바둑 쇠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년 8단에 머문 조남철 9단= 한국은 현대바둑을 개척한 조남철 선생이 승단제도를 매우 견고하게 운영함으로써 70년대까지는 9단이 한명도 없었다. 이 시절에 9단이 되려면 4,5단을 2점 접고 이겨야 했다. 초창기 적수가 없는 강자였던 조남철 선생은 스스로 만들고 끝끝내 고수한 제도에 의해 무려 20년간 8단에서 스톱해야 했다.

1982년 새로운 승단제도에 의해 당대 최강자 조훈현 8단이 첫 9단이 됐다(조남철 선생은 그후 추천에 의해 두번째 9단이 됐지만 그의 9단은 15년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국, 2년여 만에 9단이 13명=한국기원의 승단 제도는 계속 바뀌었고 승단을 원하는 프로들의 열망을 받아들여 그때마다 점점 더 쉬워졌다. 세계대회 우승은 3단, 메이저 국내대회 우승은 2단씩 거저 승단하는 제도와 함께 오랜 세월 승단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승률(17%)로 승단할 수 있는 제도도 생겼다.

이리하여 3단이던 이세돌은 단 넉달 만에 9단이 됐고 박영훈은 19세에 세계 최연소 9단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또 많은 노장도 입신의 대열에 올라 한국기원은 2003년 이후 2년 반만에 9단만 13명이나 늘어나는 빅뱅을 연출하고 있다.

◆서양 최초의 9단, 마이클 레드먼드=미국 국적의 마이클 레드먼드는 일본기원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00년 서양인 최초의 9단이 됐다. 미국 국적의 프로기사는 모두 6명. 활동무대는 한.중.일 3국이다. 유럽에도 러시아인 2명 등 상당수의 프로가 있지만 9단은 아직 없다.

대만엔 저우쥔쉰(周俊勳) 9단 한 명이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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