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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잃고 오열하는 아버지 장면 … 맥주 여섯 캔 한 번에 마시고 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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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영화 ‘현기증’에서 어린 자식을 잃은 상호(송일국)가 오열하는 장면. 송일국은 “상호를 연기하면서 힘든 감정을 경험했지만, 배우로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유산의 아픔을 딛고 어렵사리 출산한 아내 영희(도지원), 고아로 자라나 가족과의 소통에 서툰 남편 상호(송일국), 치매 전조증상을 보이는 영희의 엄마 순임(김영애) 등. 각자 말 못할 사정을 가진 이들 가족에게 커다란 비극이 닥친다. 순임의 실수로 아기를 잃게 되면서, 가족간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파국에 이른다. 영화 ‘현기증’(6일 개봉, 이돈구 감독)은 이처럼 무겁고 슬픈 이야기다. 영화가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 본성의 심연을 파고들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상호를 연기한 송일국(43)은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자의 건조한 표정을 오롯이 표현해냈다. 작품 속에서 늘 멋지고 든든한 모습을 보여온 그가 초라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연기한 건 처음이다.

 -‘작업의 정석’ 이후 영화는 10년 만이다.

 “시나리오를 읽고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이야기도 무겁고 불편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이 작품을 하기 전 연기 공백이 있어서 연기에 대한 갈증도 컸다.”

 -‘주몽’(2006, MBC)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 MBC) 등 그간 멋지고 영웅적인 배역을 맡았었는데.

 “이돈구 감독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캐스팅을 제안했는데, 내가 출연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의아해 했다. 상호 역은 내게 도전적인 캐릭터였다. 역할에 무언가를 가미하지 않고, 내 평소 모습 그대로 보여준 연기는 처음이다. 머리카락도 부스스하게 나뒀고, 살도 일부러 찌웠다.”

 -장모인 순임의 실수로 아기를 잃은 뒤, 자학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던데.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몰라서 촬영 전 맥주 여섯 캔을 한 번에 마시고 촬영했다.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했던 것 같다.”

 -영화를 찍고 난 뒤 후유증 같은 건 없었나.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다. 아이를 목욕시킬 때 잠시도 한눈을 못 팔겠더라. 영화 속 사고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김영애 선배는 더 큰 후유증에 시달렸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던 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우시더라.”

 -차기작 ‘플라이 하이’ ‘타투이스트’에서는 어떤 역할인가.

 “‘플라이 하이’에서는 삼류건달로 나온다. 연쇄살인범 역을 맡은 ‘타투이스트’에선 처음으로 정사신도 찍었다. 두 영화를 촬영하면서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영화계에선 ‘송일국은 영화를 안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현기증’ 덕분에 두 영화에 잇따라 캐스팅됐다. ‘현기증’이 배우 송일국의 새로운 시작점이 됐다.”

 -활동이 많아지면서 삼둥이(송일국의 세 쌍둥이 아들 대한, 민국, 만세)와 보내는 시간은 부족하지 않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려면 어쩔 수 없다. 아내가 버는 돈으로 아이들 보모비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내가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웃음).”

지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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