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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문화 접목 성공, 뿌리 내린 한미백년|한국 속의 미국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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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백년 전 만해도「이상한 나라에서 온 진기한 사람들」이었을 뿐인 미국인.
그 미국인은 1백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친근한 외국인」이 되어 매일 수백명씩 한국을 찾고 한국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1백년 전 이 땅을 처음 밟은 미국인들에게 「금은보화를 왕릉에 가득 숨겨둔 동양의 철국」이상일 수 없었던 한국이 지금은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자 9번째 교역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관계를 반영하듯 한국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미국인은 화교에는 못 미치지만 가까운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또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은 단순히 머리 수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폭이 넓다.
작년 한햇동안 우리 나라를 찾은 미국인은 모두 13만2백6명. 올 들어서는 지난 4월까지 4만1천8백77명으로 매달 1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고 있다.
이 가운데 6개월 이상의 장기체류 여권을 갖고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인은 지난 4월말현재 모두 5천14명.
여기에는 물론 4만여명의 주한미군은 빠져있다.
이들 순수 민간인들의 체류현황을 살펴보면 양국관계의 현 좌표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884년 7월, 의사였던 「호리스·N·엘런」이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들어온 이래 지난 l백년동안 한미관계를 민간차원에서 이끌어온 것은 바로 미국인 선교사들의 기독교 포교활동.
지금도 동반가족을 포함해 1천95명이 전국각지에서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있다.
이 땅에 처음 외국인상점의 간판을 단 미국인은 「얼런」보다 한발 늦게 한국에 온「W·D·타운센트」씨. 1884년9월 인천에서 「타운센트 상회」가 문을 연 이래 미국인들은 한국경제에 직·간접적인 영향과 기여를 해왔다. 60년대 이후 양국의 경제관계는 일방적인 수수관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행해왔다.
▲산업기술 지도 ▲상용 ▲투자 ▲취업 등의 실질경제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은 가족을 포함해 모두 1천9백52명이다. 이러한 분포에서도 한미관계가 일방관계에서 상호관계로 변화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실제로 57개 외국인 은행 중 미국인은행이 21개로 수위를 점하고 있고 이중 시티뱅크, 체이스맨해턴,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 등은 우리 나라의 어지간한 지방은행보다 더 높은 수익율을 올리고 있다.
또 7백55개 외국투자 기업 중 미국기업은 일본 다음으로 1백35개. 외국인상사로는 총3백54개 중 미국상사가 1백12개 사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경제분야 다음으로 두드러진 활동상을 나타내고 있는데는 교육분야.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배재 학당과 이화학당·연희전문을 설립한 이후 한국의 초기근대교육은 이들 미국인의 미션계스쿨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1백98명의 대학교환교수 및 초빙교수를 포함해 3백82명의 미국인이 국내의 각종 교육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철수하고 없지만 미국인의 국내 활동 중 평화봉사단을 빼놓을 수 없다. 66년9월 한미간의 평화봉사단 협정에 의해 작년 7월말 완전철수하기까지 15년간 모두 1천7백35명의 봉사단원이 농촌과 도시교육기관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해왔다.
대문에 큼지막하게 쓰인「개 조심」을 문패로 잘못 알고『개 선생님 계십니까』했다가 혼쭐이난 어느 봉사단원의 초기 실패담에서부터 한국인 나환자를 돌보다 미감아와 결혼한「줄리·스트롱」(24·한국명 강주혜)씨, 「젠·드윗」(34·한국 명 이장수)씨 등 미 평화봉사단이 남긴 에피소드와 봉사의 발자취는 수 없이 많다.
한미관계가 초기의 봉사관계에서 실질관계로 확대된 지난 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은 한국인사회의 어느 곳에나 나타나고 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인들끼리 울타리를 치고 모여 살던 시대도 이제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인이 흔하다 보니「괴짜」도 많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는 거혜 스님(30)과 혜각 스님(33)등 미국인청년 2명이 승려 수련을 쌓고 있다. 그 동안 조계종을 거쳐 불도를 닦고 간 미국인스님은 40여명에 이른다.
한국이 좋아 아예 귀화해 버린 미국인도 있고 수교이후 1백여 년간 한국을 떠나지 않고 3대째 한국에서만 살고 있는 미국인 가족도 있다. 66년 서강대와 대건신학 교수를 역임한「케네드·E·킬로런」(한국 명 길노연)신부가 미국인으로서는 첫 귀화자.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돼 지난 1896년 이후의 할아버지 대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에드워드·B·애덤즈」씨(48·건국대부설 서울국제학교 교장)등이 그런 미국인들이다.
한국 속의 미국인은 대개 애정과 호감을 갖고 한국을 보고 있다. 최근 한국적 미국인 3백명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5.2%가 한국인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 재발 시 미군의 군사개입을 89%가 지지하고 있고 80%는 미군철수에 반대하는 안보관을 지니고 있다.
또 한국 속의 미국인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친한 벗의 대접을 받고있기도 하다.
최근 광주미문화원·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고 반정부 세력에서 반미적인 얘기가 간혹 나오고는 있으나 그것이 극히 제한된 움직임이라는 데는 한미양측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인에게 한국은 미국 다음가는 천국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한 관계는「리처드·워커」주한미국대사의 지적처럼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양자관계의 양적 확대에서 오는 이해의 상층으로 새로운 마찰을 야기할 소지마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미수교 제 2세기는 한국 속의 미국인이나 그들을 포용하는 한국민 들에게 다같이 상호 이해의 기반을 보다 확대해 나가야만 될 과제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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