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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없는 사회 됐으면"|대폭 개각을 보는 국민·관계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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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예고된 개각이었지만 그 폭은 예상외로 컸다. 21일 상오 라디오를 통해 개각소식을 듣던 국민이나 각 부처 직원들은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어음사기사건 이후 관계부처 장관을 중심으로 소폭 적인 개각을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의의로 그 폭이 컸다며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개각 소식을 전해들은 전국민은 차제에 모두가 심기일전해 다시는 장 여인사건 같은 이변이 없는 안정되고 화합된 사회가 이룩돼 마음놓고 살수 있기를 바라는 표정들이었다.

<청와대>
21일 상오 9시20분쯤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본관으로 올라갔던 이웅희 대변인은 꼭 1시간만인 10시20분 기자실로 내려와 수첩에 적은 각료들의 경질내용을 발표하기 시작.
이 대변인은 『상당수 국무위원이 경질됐다』고 말문을 연 뒤 이어 11명의 각료와 1명의 각료급 인사, 그리고 국세청장 등 모두 13명의 명단을 전직과 함께 읽어 내려간 뒤 이번 내각의 성격에 대해 한두 마디 언급하는 것으로 약15분 동안의 발표를 끝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 대통령이 구체적인 개각 구상을 하게 된 것은 내각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돌기 시작한 4∼5일 전부터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각발표에 즈음해서 밝힌 『부총리와 재무부장관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하지만 수습이 책임보다 중요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사태수습 후에는 다시 인책인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아는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청장의 경질은 사채시장 단속불충분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하고 내각·당에 이은 대통령비서실의 개편여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없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획원>
이번 개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져 있던 김준성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간부들이 장관실에 뛰어들어 와 이를 확인하기에 바빴다.
취임 몇 달만에 장관이 바뀌는 줄 알았던 기획원관리들은 환호성. 유임이 발표된 같은 시간에 김 부총리는 우리 나라에 온 한-미 경제협의회 사절단의 예방을 받고 있었다.
어떤 간부는 김 부총리는 21일 아침에 출근하자 간부회의를 열고 『그 동안 수고 많았다』며 담담한 심정으로 인사겸 해서 시국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재무부>
개각이 있게되면 제1번으로 바뀌지 않을까 여겨졌던 나웅배 재무부장관의 유임이 발표되자 재무부 직원들은 한편 놀라면서도 모두 만세를 부를 듯이 기뻐하는 표정들.
개각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나 장관의 사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재무부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분위기였다.
집무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개각뉴스를 들은 나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번에 그만두지 못한 것은 나로서는 퍽 괴로운 일이며 오히려 마음이 더 무겁다. 일의 뒤처리를 잘 하라는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다시는 장 여인사건 같은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유임소감을 말했다.
나 장관은 21일 아침 정상출근해서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김기환 KDI원장과의 면담을 잠시 가진 것 외에는 집무실서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 장관은 개각설이 나돈 이후 『생각지도 않은 재무장관을 했고 4개월 반이면 역대 재무장관 중 최단명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물러갈 각오아래 담담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 장관이 유임됨으로써 장 여인 사채사건에 대한 자체 인책인사 확대걱정(?)은 일단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있다.

<법무부>
총장의 장관임명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자 그때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총장 비서관실에서는 환성을 질렀다.
곧바로 서동권 대검차장·정해창 서울지검 검사장이 총장실로 달려와 축하인사를 나누었고 대검부장검사를 비롯, 검찰간부들이 줄을 이었다.
정치근 신임장관도 미리 통보를 받지 못했던 듯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소감을 묻자 신임 정 장관은 『총장으로 있으면 업무가 범죄수사에 국한되어 용이하지만 장관이 되면 업무범위가 넓어져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한편 이종원 장관이 물러나는 법무부의 간부들간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한 간부는 『전임 이 장관이 의욕이 대단한 분으로 재임 l년1개월만에 물러나게 되어 섭섭하지만 신임 정 장관이 검찰내부에서 기용된 분이어서 다행이다』고 했다.

<국방부>
주영복 국방장관 주재로 상오9시 평상대로 업무보고 회의를 가졌다.
1시간정도 계속된 회의가 끝난 직후 개각발표가 나왔다.
합참의장에서 장관이 된 윤성민 대장은 지난 10일 미 합참의장과 캐나다정부 초청으로 여행 중.
직원들은 합참의장이 장관으로, 차관이 총무처장관으로 영전해 경사가 났다는 표정. 군 출신이 이번 개각에서 중용된 점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농수산부>
이번 개각에 가장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설마 우리야…』하고 마음놓고 있던 농수산부인 듯.
경제부처 중에서 이번 사건과 가장 원거리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다 고건 장관취임 후 작년의 풍년과 통계의 현실화 등 비교적 원만하게 농정을 펴온 점을 들어 대폭 개각설이 나도는 가운데도 『농수산부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것이 부내 관리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상공부>
서석준 상공장관의 미국출장 중 장관이 바뀐 상공부는 개각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뜻밖」이라는 표정들이다. 상공부 분위기는 서 장관이 사채파동 속에 진부를 알 수 없는 구설수에 오르기는 했으나 갈리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상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외부에서 장관에 기용되자 상공정책의 기로가 바뀔 것으로 성급히 점치는 직원들이 많다. 금진호 차관은 21일 상오 한미 경제협회의 미국 측의 대표단의 예방을 받고 있던 차 개각뉴스를 돋고 장관부재 중 개각을 당해 난처한 입장인 듯 표정이 굳었다.
장관비서들은 이른 아침부터 불안해하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 장관실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고 보고 짐을 챙기다가 개각을 알게 되었다. 서 장관은 출장예정을 하루 앞당겨 22일 아침 일찍 귀국예정으로 있다.

<보사부>
제20대 보사부장관에 여성의원인 김정례 의원이 임명되었다는 발표가 나자 보사부는 의외의 인사라고 놀라는 표정들.
첫 여성장관을 모시게 된 직원들은 『김정례 의원이 누구냐』고 서로 묻기도 했다.
경질된 천명기 장관은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상오 8시45분에 출근했다가 9시부터 환경청 회의실에서 월례 국장회의를 주재하고 상오10시쯤 장관실로 돌아와 대기.

<노동부>
초대 권중동 장관의 후임으로 정한주 노총위원장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노동운동을 하던 기수가 이제 노동행정을 맡게됐다』면서 『노동전문가 끼리의 교체이니 노동행정에 큰 변동이야 있겠느냐』고 안도하는 표정.
직원들은 전임 권 장관의 고향이 안동인 것을 들어 민정당의 당직개편과 관련을 지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교통부>
윤자중 교통부장관이 경질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통부 직원들은 모두 의외라는 듯 일손을 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윤 장관은 이날아침 8시30분에 출근, 9시부터 정례국장회의를 주재하는 등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개각발표가 있자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야지』하며 웃음을 지었다.

<체신부>
어음 사기사건과는 관계없는 부서여서 장관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체신부 관리들은 장관경질이 뜻밖이라는 표정.
그러나 신임 최 장관이 전기통신분야에 정통한 전문인인데다 지난해부터 1년 이상 한국 전기통신 연구소장으로 체신행정을 비교적 잘 아는 터여서 업무추진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

<정무 제1>
20일 당직개편 때 탈락했던 정종택 정무 제l장관은 장관직도 떠날 것을 미리 예상해 20일 밤부터 비서진들에게 짐을 싸도록 지시.

<총무처>
총무처국장들은 박찬긍 신임장관의 성품·경력 등을 알아내려고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유창순 총리가 청와대에서 돌아와 김 총무처장관에게 발탁되는 장관들에게 연락해주도록 지시를 했고 비서진들은 총리의 유임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
김용휴 전 총무처장관은 총리가 청와대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이 탈락된 것을 확인한 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 동안 소신껏 일했으니 후회가 없다』면서 마지막 간부회의를 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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