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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여인 골동품 80%가 "가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억 2천만원을 홋가한다는 이당의 미인도, 5천만원 짜리 고려청자, 운보·각제·남농의 산수화, 청담·서옹 등 서승들의 글씨….
1백여 평의 널따란 정원이 지하실과 참고에서 쏟아져 나온 1천여 점의 서화·골동품으로 비좁았다.
17일 하오 l시 30분. 서울 청담동 58블록 2 이철희-장영자씨의 집에서 실시된 재산감정·압수집행 광경은 마치 문화재 발굴현장을 방불케 했다.

<전문가20명 동원>
서울지검 박주선 검사의 지휘로 매매위탁기관인 상업은행 관계자와 경찰이 입회한 가운데 한국고미술협회 전문감정사 20여명이 동원돼 실시한 감정에서 베일에 싸였던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서화·도자기 등의 골동 수장품이 처음으로 전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1천여 점의 수장품 가운데 80%는 가짜로 밝혀져 「2천억원의 여자」장 여인의 미술에 대한 안목은 역시 허영뿐이었음이 드러났다.

<3분의 1만 소장>
이날 감정에서 확인된 장 여인 수장품은 도자기·불상 7백여 점, 서화 3백여 점 등 모두 1천여 점.
장 여인은 이 1천여 점의 수집품 가운데 3분의 2인 7백여 점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 H 은행장 한모씨(61) 집에 맡겨두고 나머지 3분의 1만 청담동 자택에 수장하고 있었다.
검찰은 한모씨 집에 보관된 7백여 점을 일단 청담동 장 여인 집으로 옮긴 다음 자기골동·서화 등으로 구분, 감점을 실시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1억 2천만원을 홋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당 김은호 화백의 미인도. 가로1m·세로2m 의 이 그림은 감정결과 가짜로 밝혀졌다. 평가액은 20만원. 감정사들은 진짜라도 3천 5백만원 정도이며, 1억 2천만원은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
도자기류에서는 2백여 점의 이른바「신안유물」이 쏟아져 나왔으나 역시 거의 전부가 가짜.
그 중에도 2억원을 홋가 한다고 알려진 청자관음불상은 교묘히 모조한 홍콩제로 확인돼 감정사들을 실소케 했다. 만일 진짜라면 1억 5천만원은 받을 수 있는 명품이라는 것.

<최고 5천만원 짜리>
장 여인은 78년 가짜 충무공 혈죽도 사건으로 망신을 당한 뒤 어느 정도 고미술에 소양을 쌓은 듯 80년 이후 구입한 물건은 대부분 진품이었고 값도 싸게 사들였다고 감정사들은 전했다. 현대아파트 한모 은행장 집에 보관시켰던 것은 90%가 가짜인 반면 자기 집에 보관한 것은 90%가 진짜여서 장 여인이 안목을 얻은 뒤 소장품을 정리한 인상.
진품 중 최고감정가격은 5천만원 짜리 고려청자 매병. 높이 35㎝의 이 청자 병은 일본에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다음은 4천만원으로 평가된 이조백자당초문병.

<최하 5백원짜리도>
당초 50억원 이상으로 알려진 장 여인 소장품의 총 평가액은5억∼6억원으로 밝혀져 빈 껍데기의 인상.
1천여 점 가운데는 최하 5백원 감정가가 나온 모조품까지 다수 섞여 있어 감정사들은 『골동품장의 명예에 관계된 일』이라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장 여인 소장품 가운데 이처럼 가짜가 많은 것은 78년 충무공 혈죽도를 속아 구입할 때 골동품상 박모씨에게서 가게 진열품 전체를 통째로 사버린 탓이라는 뒷얘기도 전해졌다.

<상은 창고로 옮겨>
감정이 끝난 소장품들은 일일이 사진을 찍고 목록을 작성한 다음 17일 하오 10시쯤 상업은행 소속 서울 8다 2596호 2t 트럭에 실려 3차례에 걸쳐 상업은행 본점 지하창고로 옮겨졌다.
한편 장 여인에게 절을 뺏긴 전 정토사주지 설산 스님은 지난 4월 20일쯤 장 여인에게 돈을 빌기 위해 5백여년 전 명나라 선덕 연간에 만들어진 놋쇠향로를 맡겼는데 돈을 못 빌고 이번 압수에 자신의 놋쇠향로가 쓸려 들어가지 않았는가 모르겠다고 문의전화를 해 오기도 했다. <한천수·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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