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받기 전이라 말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7일 하오 9시 32분 대검수사관 2명에 의해 검찰청에 연행된 이규광씨(57)는 각오를 하고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에 미소를 띠는 여유도 보였다.
하오 9시 30분쯤 마침 이날 검찰에 출두했던 이동찬 코오롱 회장이 5분 동안 보도진들과 만나고 검찰청을 나서는 순간 이씨가 탄 서올 1라 5363호 검은색 마크V 승용차가 빠른 속력으로 달려 들어와 청사 서쪽 문 앞에 멈췄다.
밤색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이씨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몰려든 30여명의 보도진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리자 앞이 안 보인다는 듯 손을 이마에 얹으며 2∼3분 동안 청사입구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기자들 질문에 응했다.
이씨는 『왜 왔느냐』는 질문에『잘 모르겠다. 한남동 집으로 수사관이 찾아와 같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에도 보도진 때문에 승강기가 오를 수 없게 되었으나 전혀 짜증나는 표정 없이 시종 담담한 자세였다.
이씨는 12층에서 승강기를 내린 뒤『밤늦게 수고들 한다』며 기자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수사관들을 따라 조사실로 향했다.
이씨는『사표를 낸 뒤 줄곧 집에 있었다』면서 장씨를 뒤에서 봐 주었느냐는 질문엔『조사를 하면 밝혀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날 검찰청 분위기는 상오부터 정치근 총장·서동권 대검차장·이종남 중앙수사부장·성민경 중앙수사부 2과장 등이 3시간 이상 회의를 했고 점심땐 정 총장과 서 차장이 법무부에서 이종원 장관과 점심을 들며 숙의를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으로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씨를 연행하기 2시간 전인 하오 7시 30분쯤에도 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은 『다른 사람들 조사를 더 해보아야 결정될 일』이라며 강력히 부인하다 하오 8시 10분쯤 구속방침의 조간신문들을 보고는『사람도 안 때려 봤는데 무슨 구속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 총장과 서 차장이 두 번째로 법무부에 들어간 것은 이날 하오 5시쯤. 이에 앞서 하오4시쯤 이 장관이 청와대로 올라가 검찰의 방향을 설명했고「결심」을 얻어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40여분 동안 이 장관실에서 협의를 한 정 총장은 굳은 표정이었다.
서동권 대검차장은 하오 8시쯤 기자들에게 『오늘밤을 기다려 보라. 실망하지 않을 것』 이라며 이씨 연행을 암시했다.
한남동 힐 사이드 아파트 B동 3호 자택에서 연행되기 전까지 이씨는 내내 집안에서 대검수사관들의 기초조사를 받았고 하오 9시쯤 이씨 집 외등이 켜지면서 대검수사관 2명이 승용차로 도착, 신분확인을 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
10분쯤 뒤 안에 있던 다른 수사관 2명이 먼저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물리친 뒤 이씨를 차에 태워 검찰청으로 향했다.

<이씨와 일문일답>
-왜 왔는가. ▲잘 모르겠다.
-자진출두 했는가. ▲수사관이 한남동 집으로 찾아와 함께 왔다.
-그동안 뭘 했나. ▲사표를 낸 뒤 줄곧 집에 있었다.
-장 여인의 비호세력이라는 말이 나도는데…. ▲조사를 받아 보면 안다.
-장 여인 비행을 미리 알고 있었는가. ▲조사전이라 나중에 얘기합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심경은‥. ▲죄송하다. 부덕의 소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