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후회한다고 해서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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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마다 봄이 되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라고 기억하지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어떤 상념 속에 시달린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이름 붙이기는 싫으나 우선 건강이 좋지 않아지고 따라서 정신까지도 혼란에 빠진다.
어렸을 때에는「봄을 타는 아이」로 취급을 받았으나 40이 넘은 나이에도, 그 증세는 사라지지 앓고, 따끈한 여름이 되어야 좀 정신이 드는 것이 상례다.
나대로 극복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치료법을 강구해 오고 있으나, 금년 봄에는, 그 원흉이 구체적으로 내 앞에 다가온 것 같다.
『대학 입시생, 고3생!』
우선 시험을 치려야할 아이가 생겨난 것이다.
시험이라는 것이 원흉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밤낮없이 나는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현명하고도 야무진 많은 수험생을 길러낸 어머니들, 선배들한테서, 비결도 듣고, 자문도 받고, 그들의 경험을 통한 장단점을 브리핑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지식이라는 것, 즉 공부라는 것이 아이의 머리에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가 아무리 좋은 참고서, 좋은 공부방법으로 책상에 앉아 있어도 결국은 아이의 두뇌가 그걸 받아들여 줘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할까?
기분을 좋게 하고 영양섭취를 충분히 해줘야 할까?
대체로 나는, 곰곰이 생각해서 판단을 내리고 나면, 다른 일들은 그대로 잘 밀고 나가는 성격이지만 이일만은 그토록 당황해 질 수가 없다.
정말 어머니로서 자신이 없어진다고 솔직이 고백하고 싶다.
더군다나 고3생이 되니까 앞날을 어느 정도 결정지어야 할「전공과목」을 결정해야할 문 앞에 서있기 때문이기도 하므로.
『엄마, 어떻게 할까? 무슨 과를 지원하면 좋을까?』라고 아이가 의논을 해오면, 나는 글쎄로 시작해서, 『네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렴. 뭐가 제일 재미있고 싫증이 나지 않는 과목이니?』라고 대답함으로써 아슬아슬한 위기라도 모면하는 듯 하고, 나는 또「과연 하고 싶은 것, 제일 재미있는 것만을 하면서 살수 있었나?」라고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지나온 시절, 우리들의 고3생 시절을 비교할 수는 없어도, 역시 그 시절이 어떤 본보기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는 없다.
그렇다. 하기 싫어도 해야될 일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훨씬 숫적으로 많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
땀을 흘리고, 극기(극기)하면서, 공부했던 순간 순간이야말로 긴긴 일생이 값싼 구슬들로 꿰매어져 있더라도 그 중에서 반짝이며, 그래도 값비싼 몇 개의 보석이 되어서 박혀있는 순간 순간이 그 극기와, 인고의 순간 순간들임을 가르쳐 줘야한다.
금년 봄, 아이들은 박박깎던 머리까지 기르고 거울을 자주 보면서 자기의 변화있는 모습을 신기해하는 것 같다.
거울울 보면서, 내년부터 입게될 사복차림의 자신까지 상상해 보는 것 같다.
격렬한 변화와 탈바꿈, 무한한 상상력으로 순백의 감수성을 수 놓아갈 사춘(사춘)의 계절까지 맞이한 아이에게 그래도 참고 극기하고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고, 나는 말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도 지난 시간을 후회해서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은 흘러갔을 뿐이다』라는「찰즈·디킨즈」의 말을 빌면서 변화의 시대를 맞아 혹시 들떠 있을지 모를 아이에게 『가장 재미있고, 가장 보람있는 것이 공부하는 것』임을 계속해서 납득시켜야 할 것 같다. 박현영

<약력>
▲시인 ▲38년 경남 마산 출생 ▲경희대 영문과 졸업 ▲60년 여원 신인상 ▲『여류시』 창간동인 ▲시집『상은초』수필집『흐르는 물에게 물어 보아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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