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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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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

“정치는 언제 할거냐?”

 신문사에 입사한 이후 친구들은 농담조로 이렇게 묻곤 했다. 총선 때마다 몇몇 언론인이 국회로 진출하는 걸 보고선 “너도 한번 해보지?” 식이다. 농으로 물으니 “다음 선거에 나가지 뭐” 같은 농으로 화답한다.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이유, 우선 ‘그릇크기론’. 집에선 가장 노릇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고, 회사에선 직급에 걸맞은 업적 하나 변변치 않은데 나랏일이라니, 언감생심이다.

 둘째 ‘자질론’. 정치인의 자질과 관련, 막스 베버는 열정·책임감·균형감을 꼽았다(『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약용은 “청렴하지 않고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청렴을 공직자의 최고 본분이라 했다(『목민심서』).

 아쉽게도 내 속에 이런 정치인 자질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거 하나. 우리나라 정치인, 좁게는 국회의원 중 이런 자질 갖춘 사람 누가 있을까. 역사책에 나오는 몇몇 인물이 떠오르지만 현역 정치인 중에는 도무지….

 오히려 이런 좋은 자질과 반대되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우리는 ‘정치인형 인물’로 꼽는 건 아닐지. 이를테면 나랏일보다는 내 밥그릇 지키기에 더 열심인 사람, 덕망과 학식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 입만 열면 허언을 쏟아내는 사람을 ‘정치에 적합한 인물’로 칭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상황에 따라 ‘정치인 같다’란 말은 욕 대신 쓸 수 있다. 국회의원에게 주는 세비조차 아까워한다. 존경은커녕 조롱의 대상이기 십상이다. 이런 게 한국에서의 정치인 위상이라는데 이의를 달 수 있을까.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또 언급하는 건 우리가 워낙 위급상황에 있어서다. 경제만 국한시켜 보자.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1년째 1%도 안 되는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수출이 2.6%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처음으로 줄었고, 감소율은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4분기 이후 가장 컸다. 산업생산은 9월에 이어 10월도 감소세를 보였다.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돈 빼고 있고, 환율 움직임은 극히 불안하다.

 경제가 성장엔진 부재로 시들어가고 있는데 정치권에선 아직도 ‘네 탓’이다. 최근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활성화 해법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싸늘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책이 실패할 동안 야당은 뭐했나. 세월호 핑계로 어떤 민생 관련 법안도 처리하지 않은 걸 모른단 말인가. 두 손뼉이 마주치지 않는데 소리가 날 리 없다.

 이 와중에 불거진 개헌론과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법 개정은 나 같은 범부(凡夫)에게도 나랏일을 걱정하게 한다. 정치인들이 잘 협력하면 국가 백년대계를 세울 중요한 사안이지만 밥그릇 싸움에 파묻혀 치고 받을 땐 끔찍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인들의 실력은 본 게임을 위한 위장전술이었기를 꿈꿔본다.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