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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원의 지하경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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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 여인 사건을 계기로 사채쇼크가 심각하다. 사건으로선 일단락 되었지만 그 경제적 후유증은 이제부터다. 사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연쇄부도 등 천파만파의 충격이 우려된다.
사채는 경제를 제대로 돌게 하는 윤활유 적 역할도 한다.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필요악적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사채쇼크를 계기로 지하경제의 큰 강줄기를 이루고 있는 「사채」를 벗겨 본다.

<편집자 주>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받는 사채놀이는 많은 경우 죄악으로 취급해 왔다.
사채는 경제가 발전해 오는 가운데 일어나는 필연적인 산물이지만, 역사는 사채를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곤 했다.
「세익스피어」의『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샤일록」이 그렇고,「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는 도끼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사채는 증오의 적이 되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오는 필요악적 존재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통일을 한 신라 문무왕이 장리 벼 소탕 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들어서 만도 5·16후 농촌고리채 정리란 일대 수술을 가했으며, 72년 8월에는 사채동결(8·3조치)이라는 초비상조처까지 했지만 역시 칼로 물 베기 식이었다.
사채는 잡초와 같이 밟히면서도 더욱 무성히 뻗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사채규모는 약 1조원 남짓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채규모를 추산하는 것은 농수산부가 전국의 쥐 통계를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며 또 그만큼 오차도 크다.
72년 8·3조치 때 정부는 사채규모를 약 9백억 원 내지 1천억 원 정도로 추산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신고된 사채규모만도 물경 3천5백억 원에 달해 이 조치를 추진했던 정부당국자들도 놀랐다.
당시 전 은행의 총대출금이 1조2천억 원이었으니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금융시장이 엄연해 존재했던 것이다.
제5공화국이 들어선 80년 9월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들이 추산한 사채규모는 약 8천5백억 원이었다. 이 수치는 한은 등 이 72년 8·3조치 당시의 사채신고 액과 조사당시의 여러 지표(통화·총통화·민간여신)틀 비교해서 추산한 것이다.
따라서 8·3조치 당시와 80년 9월을 비교하면 기업의 사채규모는 약 2∼2.5배 증가했으나 경제규모에 대한 비중은 약 4분의l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요즘 사채규모가 1조원이라면 1개 시은의 대출금 1조6천억 원보다는 적다. 그러나 사채 위력은 규모로 따질 수는 없다.
사채는 대부분 기업이 급한 돈을 필요로 할 때 융통되는 단기자금임을 감안하면 은행의 당좌 대월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현재 전체예금은행의 당좌 대월 잔액은 약 7천8백억 원. 따라서 성격 면에서 비슷한 당좌 대월과 비교하면 전체은행의 규모보다 큰 것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1조원의 사채시장의 영향력은 자금회전율 등을 감안하면 l개 시중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 사채시장은 그 나름대로 확연한 질서와 원리를 지니고 있다.
신용을 바탕으로 거액의 돈이 움직이니 그 질서는 무척 엄격하다.
사채의 원주인인 전주는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큰 전주일수록 베일에 가려 있다.
자금의 중개는 보통 브로커(중개인)를 통해 이뤄진다. 브로커의 성가는 얼마나 큰 전주를 몇 명이나 물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커들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전주를 밝힐 수 없는 것이다.
또 사채는 은행이나 단자호사를 통해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경우 은행이나 단자금리와 사채금리와의 금리차이는 뒷거래를 통해 전주에게로 들어간다.
간혹 대기업의 경우 회사간부나 친지의 돈을 직접 받기도 하는데 위장 사채의 성격을 띠는 것이 많다.
최근에는 단자회사를 통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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