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남의 태권도는 하나라요"

중앙일보

입력

“북과 남의 태권도는 뿌리가 하나라요. 최홍희 총재가 살아생전에 늘 ‘둘이는 합쳐야 된다’ 그랬어요.”

억양은 낯설지만 그래도 통하는 한국말. 싱가포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에서 장웅 북한 IOC 위원을 만나니 그래서 반갑더군요. (최홍희 총재는 북한이 '태권도의 창시자'라고 주장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설립자입니다)

별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된장 영어’로 열심히 말을 걸어도 긴 답변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에게 “태권도가 어찌될 것 같으냐”고 물으니 “올림픽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만 답하더군요. 하지만 같은 질문을 장웅 위원에게 하니 “뭘 걱정을 그리 하누. 100%야.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술술 통하는 우리말로요.

2012년 올림픽 개최도시를 런던으로 낙점한 IOC 총회는 한결 한산해졌습니다. 8일 28개 종목의 퇴출·잔류 투표가 있긴 하지만 큰 이슈는 아닌 분위깁니다. 많은 관계자들이 “28개 종목 모두 살아남을 것”이라고 점치고 있어요. 태권도도 당연히 존속하는 걸로 보고요.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하니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이런 중에 장웅 위원을 만났습니다. 오전 총회를 마치고 나오는 걸 붙잡았어요. 생각보다 쉽게 인터뷰에 응하고, 말도 시원시원 잘하더군요. 얼마 안 있어 YTN, 조선일보 기자가 따라붙는 바람에 단독 인터뷰는 실패했답니다 ^^; (장 위원은 한국 언론에 대해서도 꿰고 있어 중앙일보·조선일보 성향을 다 구별하고, 얼마전 난 기사의 품평까지 하더군요.)

장 위원은 북한이 주도하는 ITF 총재입니다. 설립은 한국의 세계태권도연맹(WTF)보다 먼저 했지만 올림픽에서 승인받은 기구는 WTF죠. 그는 이것을 “동생이 형님을 제쳤다”고 하더군요. 올림픽 태권도 경기방식에 대해선 부정적이었요. “최홍희 선생이 ‘수탉싸움 하는 것 같다’ 그랬는데, 그 말이 딱 맞아요.”

최근 두 기구는 통합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기구간의 역사와 정치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뭐라 평가하기 힘든 부분인데, 암튼 장 위원은 “반드시 통합시키자”고 합니다. 마치 북한이 “북남 통일 반드시 이루자” 하듯이요. 실무회담 결과가 어땠냐고 묻자 “이제 겨우 맞선 본 격인데, 뭐 벌써 시집 얘기까지 꺼내나” 이러더군요.

북한도 올림픽 태권도가 퇴출되는 걸 우려합니다. 사실 ITF도 태권도가 올림픽에 채택되면서 덕을 많이 봤거든요. 이날도 장 위원이 총회장에서 로게 위원장을 향해 “태권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다음날 투표를 앞두고 나름의 여론몰이를 한 거지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계속 남을지, 내일 세계의 선택을 지켜봅시다.

****** 인터뷰 끝나고 사진 한장 같이 찍자고 하니 선뜻 응해주네요. 키가 무려 1m90cm라 키 맞춰 찍기 힘들었음. 그러고보니 북한인과 사진 찍기는 처음 ^0^


기사출처 : 강혜란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theother/5032851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