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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단통법, 아이폰6 소동으로 먹통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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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애플의 아이폰6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2일 새벽 서울 시내 몇몇 휴대전화 판매점에선 지난달 31일 출시된 아이폰6를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이 밤새 줄을 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출고가가 78만9800원인 아이폰6(16G 모델)의 이날 실구매 가격은 1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이동통신사들이 공시한 보조금 상한 25만원가량과 대리점·판매점의 추가 할인 15%를 합쳐도 이 단말기는 최소 50만원대에 팔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판매점들이 법에 허용된 보조금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일부 판매점은 18개월 후 아이폰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보조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페이백’ 수법을 통해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런 수법이나 불법 보조금은 단통법이 시행되면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정부가 호언장담하던 것들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가 된 아이폰6 가격은 일본에선 0원, 미국에선 21만원인데 단통법에 따라 최대 지원금이 35만원으로 묶이면서 한국에서만 50만원대로 유독 높았다. 이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커지면서 이미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고객을 모집해 오피스텔 등에서 거래한 후 고객 통장으로 60만~70만원을 페이백 방식으로 넣어주는 불법 보조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부랴부랴 이통 3사 관계자들을 불러 엄중 경고하고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대리점·판매점을 조사해 과징금과 벌금을 물리겠다고 나섰으나 미봉책일 뿐이다. 이런 방법으론 제2, 제3의 소동을 막을 수 없다. 국내 단말기 시장은 잠시 규제의 고삐를 늦추면 다시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아이폰6에 지급된 보조금은 이통사가 대리·판매점에 지급한 판매 리베이트에서 나왔다. 판매점이 제 몫을 깎아 불법 보조금으로 준 것이다. 5만 개로 추산되는 휴대전화 판매점은 과열 경쟁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곳이 많다. 단통법 실시 후 영업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된 판매점 입장에선 앞으로도 이통사에서 받은 판매 리베이트를 가입자 유치에 쓸 가능성이 크다. 벌금을 물더라도 게릴라식 불법 보조금 영업을 통해 대량 판매하는 게 이득이 될 수 있어서다.

 이번 아이폰6 소동은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이 얼마나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 인하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줬다. 정부는 단통법으로 ‘혼탁한 시장’을 바로잡아 ‘호갱(호구+고객)’을 사라지게 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적으로 제값 주고 단말기를 산 사람들만 바보로 만들고 말았다. 시행 한 달 동안 단통법은 소비자 부담을 늘리고 생산·판매자에 타격을 입혀 모두를 패자로 만든 ‘루저법’이란 비난을 받아왔다. 이번에 단통법의 취약점이 낱낱이 드러난 만큼 정부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 법안 폐지를 포함해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가격을 낮추는 건 규제가 아니라 경쟁이다. 보조금 제한을 없애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고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해 이통사 간 요금 경쟁도 벌이도록 해야 한다. 적정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져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