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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불안한 광부아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편 따라 이곳 강원도 광산촌에 온 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간다. 말로만 듣던 광산촌. 몇 명쯤 죽어 나가는 것은 예사고 술과 폭력이 난무하며 이 사회에서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모여 산다는 광산촌.
올적엔 두려움과 황막함에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점차 이곳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하루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남편의 갱내 생활에 처음엔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했고 천애 고아라도 된양 서럽고 외로와 울기도 많이 했다. 고향의 학교 동창에게 편지 쓸 때에도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차마 내 남편은 광산에서 석탄 캐는 광부란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광부의 경험이 전혀 없는 아빠가 지하 몇백미터 굴속에서 목숨 걸고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피땀 흘리며 일할진대 그리 초라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지 않은가.
광부면 어떻고 얼굴에 온통 새카맣게 석탄칠을 한다해서 대수이겠는가. 하루하루 자기 일에 만족과 긍지를 느끼며 비록 노력의 댓가치곤 보잘 것 없는 현재지만 먼 훗날을 위해 작은 소망을 꿈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그 누가 광부라 업신여기고 광부의 아내라고 따돌림 하겠는가.
이곳 광산촌의 아내들은 다같이 소박하고 인정이 넘친다.
타 직종의 남편을 둔 아내들처럼 호사스런 생활 한번 못해보고 세련되지도 못하지만, 또 한 벌에 몇 십만원 한다는 옷 같은 것은 입어 볼 생각도 못하지만 억척스럽게들 열심히 살아간다. 하루종일 걱정 속에 남편이 무사히 퇴근하길 빌며 남편의 고귀한 노력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도 알면서 알뜰살뜰하게 생활한다. 다들 작으나마 꿈이 있고 진실이 담겨져 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온통 새카만 석탄더미 속에 파묻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한 이곳 산간벽지 광산촌에서 한마디 불평도, 원망도 없이 그저 숙명인양 묵묵히들 살아가는 것을 볼때 그 동안 나 자신의 지나온 생활이 너무도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던 것 같다. 단돈 십원이 남편의 피와 땀의 댓가이기에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래! 나도 이젠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광부의 아내가 되어보자. 그래서 먼 훗날 내 아들이 크면 한점 부끄럼 없이 말해 주리라. 오늘 네가 있기 까진 아빠가 광부라는 아주 고귀하고 신성한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강원도 정선군 남면 자미원광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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