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외이사 첫 임기 2년서 1년으로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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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융권 사외이사 임기가 1년으로 줄고 ‘교수 편중’에도 제동이 걸린다. ‘KB사태’로 드러난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난맥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30일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를 전반적으로 손질하기 위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무리해 내년 주주총회 때부터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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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구조 개선의 첫 표적은 사외이사제다. 관련법상 금융회사는 의무적으로 이사회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주주와 공익을 대표해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하라는 취지에서 도입했지만 오히려 ‘책임은 안 지고 권한만 즐기는’ 사외이사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단 금융위는 관행적 장기 연임에 제동을 걸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는 2년 임기에 한 차례에 1년씩 최대 5년까지 연임이 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임기를 1년 줄이면 사실상 매년 재신임과 평가를 받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교수와 관료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은 인적 구성의 다양화도 유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사들로 짜이는 리스크감시위원회·감사위원회 등에 현업 경험자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KB금융 9명의 사외이사 중 6명이 교수다. 나머지 셋 중 이경재 이사회 의장은 한국은행, 김영과 이사는 관료 출신이다. 현업 경험이 있는 이사는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유일하다. 또 9명 중 8명이 서울대 경영학과(5명)과 경제학과(3명) 출신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2007년만 해도 국민은행의 사외이사에는 기업인(3명), 교수(2명) 외에 관료, 변호사, 연구원, 언론인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KB금융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정은 다들 엇비슷하다. 교수·관료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3개 시중은행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140명 중 교수 출신이 52명(37%)으로 가장 많았고 관료·공공기관 출신이 49명(35%)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금융업계 출신은 11명(7.9%)에 그쳤다.

 이런 인적 편중은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고 CEO에 대한 견제 기능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번 회장 추천 과정에서 특정 학교 출신이 유난히 많이 포함된 것도 사외이사진의 인적 구성이 편중된 영향이었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현장과 기업 조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엉뚱한 고집을 피우거나 거꾸로 노련한 CEO에게 휘둘리는 경우도 잦다”고 전했다.

 CEO가 사내 경쟁자를 배제한 채 우호적인 사외이사들로만 ‘방패막이’ 이사진을 구성, 주인 없는 은행의 제왕 노릇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경우 사내 승계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CEO 리스크’를 키운다. 내분 사태의 한가운데 있던 KB금융 이사회의 경우 현재 지주 회장을 제외한 10명의 이사 중 9명이 사외이사였다. 핵심 계열사인 은행장조차 이사회에서 배제되는 현상은 다른 지주사에서도 관찰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사내 잠재 경쟁자를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외시키려다 보니 나타나는 일”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내 이사를 일정 수 이상 이사회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을 모범규준에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이 밖에 ▶사외이사의 개인별 활동내역과 보수를 공시하고 외부평가를 받는 방안 ▶연임·보상을 활동내역과 연계하는 방안 ▶연·기금 등의 주주권을 강화해 선임·추천 과정을 견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 달 한 차례꼴로 회의에 참석하는 KB금융 사외이사들이 최근 1년간 받은 평균 보수는 9200만원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사외이사제를 포함해 모범규준에는 CEO 추천 절차와 승계 프로그램을 투명하고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한 방안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정치권과 금융 당국부터 각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외이사 선임 등에 여전히 이들의 ‘입김’이 미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강흠 연세대 교수는 “지배구조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운영의 문제”라며 “외부에서 주요 금융사 이사회 구성에 개입하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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