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많이 시킨」고교의 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이른바 명문대진학율이 가장 좋은 몇몇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집중감사를 실시하고있는 것은 한마디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시교위의 이번 감사는 일부고교가 지나친 입시위주 교육을 실시, 전인교육이 제대로 안되는데다 『진학위주의 교육을 하는 학교장을 문책하라』고한 문교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한다.
대학진학율만을 높이려는 일부사립고교의 입시위주교육에 적쟎은 부작용이 있다는것을 우리는 안다. 공부잘하는 학생만을 중심으로한 입시지도에 골몰하다보니 다른 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등한해지기 쉽고 자칫 학습지도의 과열현상을 빚는 경우도 생기게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공부를 많이시킨 부작용이 공부를 덜시킨 부작용보다 적다는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과외를 금지한 7·30조치는 그것이 가계를 좀먹고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는등 사회적 병폐가 컸기때문이지, 공부를 많이 하는것, 그 자체가 나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후 당국의 일련의 조치를 보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마치 나쁜 일인 것같은 인상마저 주어왔다.
얼마전 시교위가 교내의 방송수업은 물론 방과후의 자율학습중 학생질문에 대해 교사가 답변해주는 것까지를 과외라고 금지한것이 그렇고 이번 『신흥명문고교』에 대한 감사도 그 맥락은 같다.
우리는 이같은 당국의 처사에 대해 우려를 금할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처사는 행정의 변익은 고려에 넣었을지언정 교육적이라고는 볼수 없기때문이다.
실시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서도 당국은 고교평준화시책을 강행해왔다.
평준화시책의 이상은 모든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력을 높이는데 있었지만 그결과는 유감스럽게도 도리어 학력이 떨어지는 저평준화였다.
그러면 고교평준화의 방법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각급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것뿐이다. 특히 사립고교만이라도 공부를 시키는 풍토를 만드는 일은 바람직하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을 이기고 살아남는 길은 잘 훈련된 인력을 많이 양성하는 길뿐이다.
또한 교육의 질적평가란 국제적인 비교에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우리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을 높여야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사리가 이런데도 공부를 잘 시켰다고해서 감사의 손이 뻗치는 나라가 이세상 어디에 또 있을지 궁금하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가 학력사회임은 다아는 사실이다. 대학졸업장 없이 이름있는 직장에 이력서 하나 제대로 못내는것이 우리의 숨김없는 실정이다. 사회적인 인식이나 수용태세부터 대학입시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기를쓰고 대학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학이나 고교만 나와도 나름대로의 보람을 갖고 일할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몰라도 고교교육이 대학입학을 목표로 한다는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피한 일로 보아야한다.
따라서 과외에서 파생되는 병폐는 죄악시할지언정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의욕이나 가르치겠다는 교사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교육행정의 기능은 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지원하고 감독하는데 있지 교육의 주체는 아니다. 교육은 일선교육기관에 맡기는것이 마땅하다. 문교당국의 지나친 간섭은 학교교육에 역작용할 가능성도 있고 행정의 편의때문이란 오해를 부를 소지도 있다.
우리는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킨 학교를 표창하고 격려하라고 까지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열성을 다하는 학교의 노력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하는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공부를 많이 시켜서 생긴 부작용과 공부를 덜 시켜서 생긴 부작용가운데 어느쪽을 취하는것이 교육발전을 위해 나은지를 곰곰 생각해볼 때인 것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